• Home
  • 이충재인사이트
  • 이충재칼럼
  • 지난 인사이트
  • 공지 사항

[칼럼] 정권 교체가 실감나는 순간들

이충재
이충재
- 5분 걸림 -

사소해 보이지만 정권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가장 실감났던 장면은 대학들의 김건희 논문 취소 결정이다. 숙대는 석사 논문을 40개월 만에 취소했고, 국민대도 "연구 부정이 아니다"고 했던 결론을 번복할 태세다. 만약 윤석열이 탄핵되지 않고 지금도 건재했다면 김건희는 여전히 석·박사 학위 보유를 자랑스럽게 얘기했을 게다. 누가봐도 뻔한 논문 표절이 사실로 인정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 정권 교체였던 셈이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지 채 한 달도 안 돼 많은 변화가 보인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난무했던 증시는 역대급 '불장'으로 돌아섰고, 새 정부 경제정책 기대감으로 소비심리도 부쩍 치솟았다. 남북 간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모처럼 접경지에는 평온이 찾아왔고, 완강하던 납북자 가족 단체도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실 출입이 제한된 언론사들이 복귀한 데 이어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도 공개됐다.

'불편한 동거'를 마다않는 국무회의에선 이전 정부 장관들과 열띤 정책 토론이 벌어진다. 김밥을 먹거나 심지어 중간에 잠시 쉬기도 하면서 몇 시간씩 국정을 논의한다. 그러자 뻘쭘하던 윤석열 정부 장관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 고위공직자 인선에 국민추천제가 도입됐고, 국민 의견에 대통령이 응답하는 소통 플랫폼도 만들어졌다. 이재명 정부 1차 장관 인사에선 고착화된 '서육영'(서울대·60대·영남)의 틀이 깨져 인재풀이 다양해졌다.

'이재명 정부' 한 달 안돼 많은 변화
가장 달라진 건 일하는 분위기 확산
난마같은 사회갈등 해결이 진짜 실력

따지고 보면 이런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이다. 국무회의에서 장관들과 정책을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고, 야당과 대화와 소통을 하는 건 대통령이 의당 해야 할 일이다. 이 대통령 부부가 첫 해외 방문에서 아무런 잡음도 없이 돌아온 게 어찌 뉴스가 될 수 있겠나. 호남지역 간담회에서 자신에게 소리치는 시민을 두고 "마이크를 줄 테니 들어와서 말씀하시라"고 한 말이 화제가 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워낙 황당하고 기막힌 일들을 자주 겪은 터라 정상적인 변화도 새롭게 다가오고 눈에 깊이 박히는 것이다.

26일 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국회 시정 연설은 정권 교체를 느끼게 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그는 연설 말미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어려운 자리에 함께 해줘 감사하다"고 했고, 추경안과 관련해 "야당 의원들께서도 언제든지 의견을 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연설을 마친 뒤에는 국민의힘 의석을 찾아가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몇몇 의원들과는 미소를 띠며 대화를 나눴고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다. 야당을 정적이 아닌 국정의 협조자로 인식하는 정상적인 대통령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는 일하는 분위기 형성이다. 일 욕심이 많은 이 대통령이 공직사회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공직자의 한 시간은 곧 5200만 국민의 한 시간과 같다"는 한마디는 이전 정부에서 느슨했던 공무원들에게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통령은 최근 측근들에게 "국정 속도를 더 내야 하는데 속도가 더디다"고 채근했다고 한다. 일보다 술을 좋아해 가짜 경호 차량까지 내보내며 늦장 출근한 대통령과는 너무 다른 광경이다. 국가 지도자가 밤잠 안 자며 열심히 일하는 건 마땅한 일인데 우리는 이를 잊고 있었다.

정권 교체의 효능감은 '윤석열 기저효과'로 인한 측면이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전 대통령과의 비교로 얻어진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지금까지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을 보여주기 위한 예열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난마처럼 얽힌 현안을 조정하고,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해 목표에 달성하는 게 진짜 능력이다. 그제야 비로소 다수의 국민이 정권이 제대로 바뀌었다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이충재칼럼

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당신이 놓친 글
[칼럼] 보수가 이재명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칼럼] 보수가 이재명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by 
이충재
2025.6.20
[칼럼] 검찰에 또 당할 순 없다
[칼럼] 검찰에 또 당할 순 없다
by 
이충재
2025.6.13
[칼럼] 이재명 대통령, 윤석열과는 달랐다
[칼럼] 이재명 대통령, 윤석열과는 달랐다
by 
이충재
2025.6.6
[칼럼] 이준석과 김문수, 같은 뿌리다
[칼럼] 이준석과 김문수, 같은 뿌리다
by 
이충재
2025.5.30
당신이 놓친 글
[칼럼] 보수가 이재명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by 
이충재
2025.6.20
[칼럼] 보수가 이재명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칼럼] 검찰에 또 당할 순 없다
by 
이충재
2025.6.13
[칼럼] 검찰에 또 당할 순 없다
[칼럼] 이재명 대통령, 윤석열과는 달랐다
by 
이충재
2025.6.6
[칼럼] 이재명 대통령, 윤석열과는 달랐다
[칼럼] 이준석과 김문수, 같은 뿌리다
by 
이충재
2025.5.30
[칼럼] 이준석과 김문수, 같은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