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동혁의 '기이한 단식'
8일만에 끝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단식은 '신의 한수'였다. 본인도 이토록 단식농성장이 문전성시를 이룰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광역단체장 등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찾아오는 건 능히 짐작했던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장 대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던 초재선 의원들이 들르더니, 당 노선 대립의 대척점에 선 유승민 전 의원까지 찾아와 손을 잡았다. 쪼개졌던 보수가 결집되고 흔들리던 리더십도 굳건해지는 모양새다.
불과 며칠 전 만해도 장 대표는 궁지에 몰려있었다. 당 윤리위가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하자 사방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최종 징계 결정을 미뤘지만 성토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느닷없이 나온 게 단식이다. '통일교·공천헌금 특검'을 명분으로 걸었지만 생뚱맞았다. 특검 피로감을 외치던 국민의힘이 되레 특검을 주장하는 모습이라니. 당 내에서도 국면전환용 단식이란 의심이 쏟아졌다.
이제 장 대표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당 통합을 해치는 어떤 언행도 중단돼야 한다는 대명제 앞에서 몸을 사리고 있다. 모두 "내가 장동혁이다"고 앞다퉈 외친다. 장 대표 체제는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당초 윤석열 내란 선고가 나오는 2월에 지도체제가 흔들릴 거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겠는가.
곤혹스러운 건 한 전 대표 측이다. 단식 전까지만 해도 공격수였는데, 졸지에 방어하는 처지가 됐다. 마지못해 '당원게시판 사태'에 대한 사과도 했지만, 이젠 단식장에 왜 가지 않았느냐고 아우성이다. 당한 사람은 한 전 대표인데, 인정사정 없는 사람이라는 평까지 덧씌워졌다. 칼자루는 장 대표에게 넘어갔다. 장 대표가 제명을 결정해도 한동훈 편에 설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한동훈 제명 논란 잠재우고, 리더십 탄탄해져
장동혁 체제 건재로 국민의힘은 더 수렁으로
여기까지만 보면 장 대표 개인적으론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다. 단식 하나로 골치 아픈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장 대표가 단식 명분으로 내건 쌍특검만 해도 그렇다. 여당에서 특검 요구에 미동도 하지 않자 단식 출구전략을 찾던 국민의힘이 덜컥 신천지 특검을 수용했다. 신천지 특검을 하면 윤석열은 물론, 박근혜 이명박 때부터 켜켜이 쌓인 유착 관계가 드러날 텐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죽 급했으면 청와대를 향해 통사정을 하는 볼썽 사나운 모습도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연일 여야 영수회담을 하자하고, 신임 정무수석에게 단식장을 찾아오라고 매달렸다. 단식은 상대방을 압박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것인데, 거꾸로 단식을 중단할 계기를 상대방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소연한 꼴이다. 이도 저도 안 되자 은둔 중인 박 전 대통령까지 불러내 가까스로 그림을 만들었다.
단식으로 당내 문제가 완전히 풀린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장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 신기록으로 보수진영에서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그 약발은 며칠 가지 않았다. 단식의 효과는 그보다는 길겠지만 사람들의 기억은 의외로 짧다. 한 전 대표 제명 사건을 마냥 미뤄둘 수는 없고, 그때는 크든 작든 후폭풍이 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의 본질적인 문제는 이상한 단식으로 더 꼬여버렸다. 당명까지 바꾸는 극약 처방을 내린 건 윤석열과의 절연을 하는 시늉이라도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헌데, 장 대표 단식으로 가장 근원적인 논란인 윤석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윤 어게인' 지지를 기반으로 한 장 대표를 채근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윤석열과 절연하지 않는 한 국민의힘은 별별 짓을 다해도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중도층은 장 대표의 단식에는 관심 없고, 윤석열을 끊어내는 지만 지켜보고 있다. 국민의힘 강성지지층 사이에선 장 대표를 두고 '정치 천재'라고 치켜세운다. 어려운 고비마다 묘수를 내 살아나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결국 국민의힘을 추락시키고, 보수세력을 수렁에 빠트린다는 건 모르는 듯하다. 장 대표 단식의 손익계산서를 냉철히 따져보는 게 우선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