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준석과 김문수, 같은 뿌리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의 '여성 혐오' 발언은 그동안 잘 포장됐던 '이준석 정치'의 민낯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TV토론에서 "내가 혐오 정치를 했다는 증거를 대라"고 여러번 되받아쳤던 이준석은 그 증거를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내놨다. 혐오와 갈라치기 정치가 일상화되다 보니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셈이다.
문제의 발언이 돌출적으로 나왔을 리 없다. 제 딴에는 대선 판세를 바꿀 수 있는 회심의 일격이라고 생각했음직하다. 자신의 주요 지지층인 '이대남' 결집을 강화하고, 단일화 공세에 흔들릴 지 모르는 보수층을 이재명 공격으로 잡아매려는 의도였을 게다. 그 발언이 여성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줄지, 가뜩이나 수준 낮은 정치를 얼마나 더 곤두박질치게 할지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던 거다. 정치적인 가치 판단이 아닌 표 계산과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공학적 이해타산에 골몰해온 이준석 정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준석은 정치 입문이래 보수정치의 철학과 비전을 뚜렷이 제시한 적이 없다. '박근혜 키드'로 정치권에 쉽게 발을 들여놓은 그는 집권세력의 내로남불 덕으로 일약 보수정당 대표에 올랐다. 이준석의 정치 경력은 바닥부터 다져올라온 게 아니라 방송에 특화된 정치평론가로 이름을 알린 게 대부분이다. 정치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이준석은 남을 비판하는 데는 재주가 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에는 늘 의문부호가 따랐다.
그 부족함을 메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이준석은 '혐오'를 선택했다. 여성과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공격해 이를 정치적 동력과 자산으로 삼았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이 가까스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준석의 갈라치기 전략을 충실히 따른 결과 아니었나. 윤석열 국정 정책의 상당 부분에 혐오와 차별이 깔려있는 것은 그런 연유라고 볼 수 있다. 거꾸로 이준석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감세, 손쉬운 해고, 임금 유연화, 미국 일변도 외교정책 등에서도 윤석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김문수와 더불어 보수정치 전면 극우화 방증
파면된 윤석열 뒤를 잇는 이준석과 김문수
이준석과 윤석열이 앙숙 관계였지만 그것은 성향의 차이였지 정책이나 노선을 둘러싼 충돌은 아니었다. 이준석이 당 대표할 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국정 운영의 방향이나 정책에 대해 갈등을 벌인 적은 드물었다. 이준석의 비상계엄 당일 행적을 놓고 여러 뒷말이 도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무엇보다 이준석이 TV토론에서 '종북' '공산주의' '친중' 등 윤석열이 자주 쓰던 용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 데서 일체성이 확인된다.
윤석열 노선을 이어받은 또다른 인물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다. 그는 아직도 비상계엄과 내란의 불법성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는 극우정치의 '확신범'이다. 김문수는 극우 정치세력인 자유통일당을 함께 창당한 전광훈과 정치적 동지나 다름없다. 이승만·박정희 계승과 주사파 척결 등 극단적 우파 신념을 가진 그가 보수정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은 보수정치의 전면적 극우화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준석과 김문수는 서로를 부인하지 않는다. 보수 지지층 경쟁을 치열하게 벌여야 할 두 사람이 TV토론에서 거들고 밀어주는 모습에서 그들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쌍생아임이 드러난다. 유세장 발언과 공약에서도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언젠가는 다시 합쳐야 되고, 합칠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준석 여성 혐오 발언과 관련해 국민의힘이 이재명 후보에게 총공세를 펴면서도 정작 이준석은 쏙 빼놓는 것도 맥락은 같다.
그들이 상징하는 극우와 혐오 정치는 윤석열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었다. 윤석열은 파면됐지만 아직도 그 세력은 건재하다. 김문수와 이준석을 합친 지지율이 40% 안팎이라는 여론조사를 예사로 넘길 수 없다. 대선에서 이들 세력을 제압하지 못하면 진정한 보수도, 진보도 설 땅이 없어진다. 이들에 대한 압도적 응징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