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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헌재 '늑장 선고', 윤석열만 웃는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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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국회에서 윤석열이 탄핵소추된지 100일이 되도록 선고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앞선 노무현∙박근혜 탄핵 때 소요된 기간과 비교해도 정상이라 할 수 없다.

탄핵심판 초기, 헌재는 윤석열 탄핵 사건이 워낙 중대해 최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의 내란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약속은 빈 말이 됐다. 윤석열보다 중요도가 훨씬 낮은 감사원장과 검사들 선고를 먼저 하더니, 이젠 윤석열보다 늦게 탄핵소추된 한덕수 국무총리 선고를 24일 한다고 밝혔다. 헌재 스스로 말을 뒤집고 원칙도 허문 셈이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헌재의 공언과 파기 사이에 달라진 것이라곤 보수 강성 지지층의 탄핵 반대 결집세가 커졌다는 것밖에 없다. 윤석열이 체포∙구속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자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결집의 강도를 높였고, 그 와중에 윤석열이 풀려났다. 이유없이 윤석열 선고가 늦어진다면 헌재가 이런 상황 변화를 의식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거칠게 말하면 헌재가 보수진영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 사이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다. 헌재 재판관 알력설, 절차적 문제 이견설, 이재명 재판 연계설 등 황당한 시나리오가 밑도끝도 없이 나돈다. 이런 추측의 공통점은 '윤석열 만장일치 파면'이라는 다수의 예상과는 결을 달리 한다는 점이다. 헌재의 머뭇거림이 결과적으로 탄핵 반대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얘기다.

의아한 건 이 사건이 그리 시간을 오래 끌 일인가 하는 점이다. 헌재는 탄핵심판이 시작되자 곧바로 쟁점을 5가지로 정리해 법리 검토에 착수했다. 그 만큼 사건의 성격이 명료했다는 거다. 재판에서 윤석열은 국회와 선관위에 병력을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국무회의는 졸속으로 열렸고, 포고령의 실체도 드러났다. 실체적으로나 절차적으로 위헌 계엄이라는 게 명백하게 밝혀졌다. 무엇보다 이 모든 증거가 생중계를 통해 전 국민에게 각인됐다.

헌재 늑장 선고, 보수진영 눈치본다 우려
위헌 명백한 윤석열 탄핵 시간 끌 일 아냐
헌재, '헌법 수호' 존립 목적 잊지 말아야

절대 다수 법조인들은 헌법재판관 누구도 이 사건의 기각문을 쓸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무장한 군을 동원하고, 비판 세력 체포를 지시하고, 언론 손발을 묶으려한 것이 합법적이라고 논리를 구성해야 하는데, 도무지 그럴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법관들은 판결을 내리기 전에 자신의 결정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사전에 면밀히 살핀다. 탄핵 기각으로 윤석열이 대통령에 복귀한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파면 외에 다른 결론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계엄면허증'을 내준 재판관이란 오명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헌재 선고가 늦어지면서 나라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국정은 사실상 마비상태고, 사회적 갈등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있다. 뭔가 빨리 매듭이 지어져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윤석열 탄핵이 병목 현상을 유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조기 대선은 기정사실로 여겨지지만 탄핵이 지체되면서 제자리걸음이다. 오죽하면 국민의힘에서도 빠른 판결을 외치겠는가. 결정이 늦어지면 대선 준비가 어려운 건 야당보다 여당이 더할 것이다.  

지금 헌재의 늑장 판결을 바라는 것은 윤석열밖에 없다. 두 명의 헌재 재판관이 퇴임하는 내달 중순까지만 버티면 헌재 구성이 안 돼 결론을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을 노리고 있다. 한덕수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돌아오면 후임자 임명을 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망상을 하고 있을 터다.

헌재를 아무리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 칭해도 헌재의 존립 목적은 '헌법 수호'에 있다. 그런 헌재가 헌법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윤석열 앞에서 흔들리는 건 스스로 존립 근거를 허무는 것이다. 헌법재판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밤을 새서라도 토론해 조속히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언제까지 내란 수괴 윤석열만 웃게 할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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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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