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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동훈, 길을 잃었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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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무혐의 처분에 "팩트와 법리에 맞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결정이 정당했다는 얘긴데, 국민 대다수와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당대표 취임 전부터 국민눈높이를 강조해왔다. 비대위원장 때는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고 했고, 지난달 김 여사 '출장 조사' 논란 때는 "국민눈높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도 했었다.

명품백 입장 후퇴는 한동훈이 현재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호시탐탐 끌어내릴 기회를 노리는 친윤 세력의 위세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는 게 그의 현실이다. 압도적인 지지로 당대표가 됐지만 비주류 원외 대표라는 설움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한동훈당' 구축은 언감생심이다.  

한 대표 취임 한 달을 꿰뚫는 열쇳말은 조바심과 성급함이다.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그로선 당권∙대권 분리규정으로 불과 1년 남은 임기 내에 눈에 띄는 실적을 거두려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출되자마자 던진 여야 당대표 회담을 재빨리 낚아챈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차기 여당 대선 주자는 자신이라는 점을 공고히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터다.

한 대표가 호기롭게 나섰지만 그가 대표 회담에서 내놓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제3자 추천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은 점점 자충수로 굳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다 받을 태세인 민주당과 어느 조건을 붙여도 특검은 안 된다는 당내 주류 사이에서 한동훈은 길을 잃었다. 이 대표의 집요한 공격을 한 대표가 막아낼 방도는 없다. 거기서 "내 입장은 그대로"라고 얘기하는 건 얼마나 모양 빠지는 일인가.  

이 대표가 강력히 주장하는 '25만원 지원법'도 한 대표로선 난감한 문제다. 이미 당 지도부 회의에서 "25만원법에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터라 무조건 반대만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왜 25만원만 주냐, 10억 100억씩 주지"라며 작심비판한 윤석열 대통령과 엇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혹 여야 대표가 합의한들 대통령실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하다.

조바심과 성급함만 보인 한동훈 한 달
호기롭게 던진 채 상병 특검법, 자충수
한동훈의 가치, 비전 없이 성공 어려워 

한 대표가 여야 대표 회담을 TV생중계로 하자고 나온 건 자신의 한계를 감안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불리한 현안은 특유의 한동훈식 화법으로 피해나가고, 이재명의 약점을 공격해 유효타를 높이자는 전략이다. 영수회담이나 여야 대표 회담은 꽉 막힌 정국에 돌파구를 얻자는 것이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토론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각한 것이다. 대표 회담을 너무 성급하게 받은 게 리더십 미숙을 드러낸다는 평이 당에서도 나온다고 한다.

한동훈에 대한 보수지지층의 요구는 당장의 치적쌓기가 아니다. 보다 긴 안목에서 한동훈만의 가치와 미래 비전, 보수혁신에 대한 구상을 보여달라는 거다. 지난 한 달동안 한 대표는 반대세력을 끌어안지도, 용산을 설득하지도,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기억나는 건 정점식 정책위원장 교체 논란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뿐이라고 실망하는 보수층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이 최근 단행한 인사에 잡음이 쏟아지지만 한 대표는 이렇다할 말이 없다. 친일 인사들 중용으로 광복절 행사가 반쪽이 되고 외교안보 라인 인사에 의문이 커지는데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로 한 대표가 표방한 중도·수도권·청년(중수청) 외연 확장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 대표 취임 후 당 지지율도, 본인의 호감도도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출마를 반대했던 측에서 제기한 주장은 현 상황에서 대표가 된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논리였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인 야당 사이에서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지금 한동훈의 처지가 딱 그대로다. 국민의힘의 한 원로는 한 대표에게 "머리는 검증됐지만 가슴으로 정치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현재의 한동훈은 가슴뿐 아니라 머리도 좋은 점수를 받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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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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