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 대통령, '왕따 장관' 만들어 얻을 게 뭔가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단행한 차관 인사는 이례적이다. 대통령실 비서관을 주요 부처 차관에 대거 내려보낸 게 이번 인사의 특징인데, 역대 정권에선 주로 말기에 이뤄졌던 터다. 정권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공직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을 때 고육지책으로 해왔던 인사 방식이다. 임기 말 흐트러진 공직사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단면이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이 임기 2년차에 '차관 통치'를 강행한 것은 그만큼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통상 임기 초에는 공직사회가 활기에 차있다. 권력의 위세가 막강한데다 새로운 국정과제를 수행하려는 의욕이 분출되는 시기다.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공무원 조직은 말 그대로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 정부 사정이 공직사회를 옥죄고,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대한 부적응도 크다고 한다.
윤 대통령으로선 이런 상황이 답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공직사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이치다. 그래서 극약처방으로 동원한 게 이번 인사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참모들을 대거 하방(下放)해 공직사회를 틀어쥐겠다는 의도다. 조직을 자극해 성과를 내려는 일종의 '메기효과'다.
하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비정상적 인사는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직접 내려보낸 차관'이라는 인증은 암행어사의 마패나 다름없다. 이런 기세등등한 차관이 장관의 말에 귀 기울일리 만무하다. 대통령의 의중만 잘 살피면 된다. 부처 직원들도 '허세 장관'보다는 '실세 차관'을 더 따르는 게 당연하다. 상하 관계가 뒤바뀐 조직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보나마나다.
'메기효과' 전략이지만 실패할 가능성 커
장관보다 권력 센 차관, 조직 기강 서겠나
윤 대통령이 현 장관들 가운데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인사가 여럿이라는 건 관가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체를 하지 못하는 데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이 작용해서다. 도덕성과 자질 시비가 불거질 경우 지지율이 하락하고 총선에도 불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차관을 장관 위에 올려놓는 건 바늘 허리에 실을 매달아 쓰는 격이다.
대통령실은 차관을 통해 대통령 뜻을 전하고, 차관은 대통령과 직거래하는 지휘체제가 정상일 수는 없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책임 소재를 가리기도 쉽지 않다. 아무 권한도 없는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다고 장관을 놔두고 차관에게 책임지라고 하기도 난감하다. 결국 지휘자는 책임지지 않고, 아래에만 책임을 지우는 최악의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때처럼 장관은 빠져나가고 실무자만 책임지는 일이 비일비재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각 부처 장관에게 전권을 부여하되 결과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총리에게는 내각을 통할하는 권한을 맡기는 '책임총리제'를, 장관에게는 인사권 등에서 자율성을 부여하는 '책임장관제'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의 총리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는 '무책임 총리'가 됐고, 장관들은 차관에게 치이고 밀리는 '무책임장관'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영준은 장관도 아닌 차관이었으나, 총리보다 힘이 세 '왕차관'으로 불렸다. MB의 각별한 신임이 권력의 원천이었다. 대통령을 믿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그는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추락했다. 이제 윤 대통령의 위세를 업은 '왕차관'이 여럿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올해가 성과를 낼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국정에서 성과를 내려면 내각과 참모들의 면면이 가장 중요한데 헛다리만 긁는 모습이다. 기를 쓰고 검찰 출신을 중용하는가 하면, 이미 실패로 판정난 MB정권 관료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그도 모자라 이번엔 '차관 통치'라는 변칙인사까지 동원했다. 이러고도 국정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몰염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