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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 또 화 나 있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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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참패로 끝난 총선 결과에 몹시 화가 난 듯하다. 단서는 여럿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다음날 공식 활동을 잡지 않았다. 사의를 표명한 비서실장에게 짧은 입장문을 내도록 한 게 전부다.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1차 윤∙한 갈등' 다음날도 출근하지 않았다. 그가 24차례나 했던 민생토론회가 그때 단 한 번 취소됐다. 심기가 불편한 일이 생기면 으레 그런 건 아닐까.  

윤 대통령의 공식 일정 중단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선거가 끝난지 일주일 넘도록 국무회의와 최소한의 외교·안보 일정만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인적쇄신 문제 집중을 이유로 대지만, 아무리 중요한 인사라도 며칠씩 외부 일정을 중단하면서까지 몰두하지는 않는다. 나라 경제가 위기이고 국제정세도 안개 속인데 대통령이 할 일이 인사밖에는 없나.

또 다른 궁금증은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대신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선택한 대목이다. 기자회견이야 애초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최소한 담화는 단상에 홀로 서서 한다. 반면에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대통령이 자리에 앉아 각료들을 상대로 말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1월 엑스포 유치 실패 때 윤 대통령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채 대국민담화을 읽어 내려갔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여당의 궤멸적 패배가 엑스포보다 더 큰일 아닌가.  

윤 대통령이 연일 공직기강을 강조하는 것도 기이하다. 윤 대통령은 총선 직후 한덕수 총리와 주례회동에서도, 국무회의에서도 공직사회 기강을 강조했다. 이 판국에 공무원 다잡기라니 이런 뜬금포가 없다. 관가에는 윤 대통령이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아서 총선에서 졌다고 여긴다는 말이 돈다. 하긴 '국가공무원의 도시' 세종시에서 '윤석열 타도'를 외치는 조국혁신당이 여당을 제치고 비례대표 득표 1위를 차지했으니 화가 날 만도 할 게다.

총선 결과에 화난 티가 역력한 윤 대통령
기대와 현실 괴리로 인지부조화 빠진 듯
부끄럼 없는 대통령이 이끌 미래 두려워

정치권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야권 인사 기용설도 '홧김'에 던진 것처럼 보인다. 그럴 생각도 없고, 되지도 않을 것을 알면서 현재의 상황이 못마땅해 그냥 저지른 게 아닌가 싶다. 국무회의 발언으로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 시점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게 수상하다. 간을 보는 것도 어느 정도지 아예 판을 깨겠다는 심보면 곤란하다.    

이런 일련의 장면이 가리키는 건 윤 대통령의 인지부조화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심리적 불균형에 빠져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선거의 충격이 너무 커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신 승리' 상태를 말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열심히 했는데 국민이 몰라준다"는 식의 푸념이 가당키나 한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총선 패배 책임이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10명 중 7명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는데 정작 그는 공무원 탓, 한동훈 탓도 모자라 국민이 틀렸다는 투다. 흔한 말로 국민과 소통을 포기하고 '역사와 대화'를 하려는 듯하다. 남은 3년도 하던 대로 해서 훗날 역사로부터 평가를 받겠다고 결심한 모양새다.

예로부터 제왕(帝王)은 무치(無恥), 즉 임금은 부끄러울 게 없다는 말이 있다.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아무 짓이나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제왕은 뭐든 할 수 있기에 스스로 부끄겁나 거리낄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의 윤 대통령에게선 부끄러움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치를 모르는 제왕은 폭군이 되기 쉽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통령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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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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