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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 '만찬' 말고 '혼밥'도 하라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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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당선자와 낙선자 가릴 것없이 불러다 밥을 먹은 게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을 노린 거라면 의도는 적중했다. 그들은 만찬에서 "무조건 충성!"을 외친대로 똘똘 뭉쳐 특검법을 부결시켰다. "관저를 떠날 때 대통령이 이름을 부르며 포옹해 줘 눈물이 났다"는 판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니 같은 편에서조차 "배알도 없는 당"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출입기자들에게 베푼 김치찌개 만찬도 고약하다. 지난 2년 동안 거들떠도 안 보던 기자들을 '채 상병 특검법' 표결을 사흘 앞두고 부른 이유가 뭐겠는가. 현안 질문도 없었던 행사에서 윤 대통령은 "전세계 모든 지도자들이 언론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언론이 없으면 그 자리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비판 언론을 탄압하고 위축시켜 세계가 공인하는 언론 후진국을 만든 당사자가 태연스레 할 말인가.  

총선 참패 후에도 변하지 않은 윤 대통령에게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다면 '만찬정치'다. 원래도 관저에서 사람들을 불러 밥을 자주 먹는 것은 익히 알려졌지만 요즘은 거르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대통령이 다양한 부류의 인사들과 만나 식사하는 것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대통령의 공적 역할에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부정적으로 작용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끊이지 않는 비선 논란도 그런 예다. 윤 대통령의 잦은 만찬이 정상적인 지휘라인을 건너뛰어 무리한 지시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채 상병 수사 외압과 관련해서도 윤 대통령이 일개 사단장을 구하기 위해 적극 나선 것이 비선의 영향 아니냐는 소문이 돈다. 해외 출장길에 나선 국방부 장관은 그 사단장의 휴가 처리 지침과 출근 상황까지 깨알같이 챙겼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윤 대통령을 움직이게 했는지가 궁금하다. 함성득·임혁백 '영수회담 비선' 논란도 따지고보면 윤 대통령의 '식사정치'가 초래한 실패작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인연으로 윤 대통령과의 식사자리에서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을 개연성이 높다.  

총선 참패 후 두드러진 '만찬정치'
소통 강화 아닌 '내편 만들기' 수단
때론 '혼밥'하며 국정 돌이켜보길 

행여 윤 대통령이 관저에서 외부인들과 밥 먹는 것을 소통 강화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대통령의 식사는 단순히 밥을 함께 먹는 게 아니라 남의 조언을 들어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식사자리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단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고 강요하기 위해 식사자리를 만드는 거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만찬정치'의 더 큰 문제는 밥을 사면 무조건 자기 편이 될 거라는 착각이다. '1차 윤·한 갈등' 때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용산으로 불러 밥을 먹은 것도 그렇고, 거절당하긴 했지만 총선 후의 오찬 제안도 그런 생각이 앞섰던터였을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던 당선자 그룹별 만찬은 관저 초청을 통해 내 편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는 박근혜 탄핵 사태가 말해준다. 당시 탄핵에 동조한 의원들 상당수는 '친박계'였다. 현재 충성맹세를 하는 '친윤' 의원들도 언제 윤 대통령 등에 칼을 꽃을지 알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혼밥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다른 공약은 몰라도 그 말만큼은 철저히 지키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 약속도 가끔은 깨기를 권한다. 혼밥의 장점 중 하나는 가벼운 명상과 생각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혼자 밥을 먹으며 차분히 이 나라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때로는 혼밥하면서 책도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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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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