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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기고도 진 윤 대통령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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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영역에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총선에서 표의 등가성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거대 양당의 꼼수로 위성정당 사태를 낳았던 게 대표적인 예다. 취지는 좋았지만 의석에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편법으로 되레 민주주의 후퇴를 자초한 꼴이 됐다.

연일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는 국민의힘 전당대회 내홍을 보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유력 주자인 나경원 전 의원의 무릎을 꿇게 만든 건 당정 일체화를 통한 총선 승리라는 목표였다. 하지만 거창한 명분 뒤에는 집단 린치와 협박, 암투와 모략이 횡행했다. 온갖 퇴행적 행태로 정당 민주화를 훼손하고 정치 혐오를 부추겼다. 집권세력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전대의 난장(亂場)은 '윤심'이 진작 '찐윤'인 김기현 의원에게 쏠릴 때부터 예고됐다. 그를 두 번씩이나 한남동 관저로 불러 식사하고 실세인 장제원 의원이 '김장연대' 운운할 때부터 알아봤던 터다. 그런데도 김 의원 지지율이 바닥을 보이자 당 대표 경선 룰을 고치고 당심(黨心) 1위 공격에 나섰다. '온실 속 화초'로 자라온 나경원으로선 애초 승산이 없는 게임이었다. 문제는 이제 '윤심'이 원하는 대로 될까 하는 것이다.

최근의 판세 분석을 보면 '친윤'대 '비윤'의 구도가 팽팽한 것으로 확인된다. 결선투표가 실시되면 김 의원이 안철수 의원에게 밀린다는 조사도 여럿이다. 유승민 잡으려고 만든 결선투표가 자충수가 된 셈이다. 김기현으로선 어떻게든 1차투표에서 끝내야 하는데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윤심'만 쳐다보는 당권주자들의 행태를 고깝게 보는 당원들이 적지 않다. 수도권 당원들의 급격한 증가가 누구에게 유리할지도 오리무중이다.    

나 전 의원은 물러나면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성공을 바란다면서도 김 의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포용과 존중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며 윤 대통령에게 일침을 놓았다. '솔로몬의 재판'을 비유로 윤 대통령을 어리석은 군주로 치부했다는 해석도 나왔다.(유인태) '윤핵관'을 곁에 두고는 윤 대통령이 결코 잘 될  수 없다는 가시돋친 말이다.

대통령실, 윤핵관, 초선 의원들 집단린치로 나경원 무릎 꿇려
'친윤' 당 대표 당선 낙관하지만 역풍으로 판세 장담 어려워
집권세력 부끄러운 행태에 유권자들 총선에서 표 몰아줄까 

냉정하게 따지면 윤 대통령으로선 득보다 실이 컸다. 겉으로는 권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게 확인됐다. 나경원을 주저앉히는 과정이 그렇다. 처음엔 기세등등한 '윤핵관'들이 나섰고, 그 만으로 힘이 부치니 초선 의원 수십 명이 가세했다. 급기야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출전해야 했다. 이 건 집권 초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대통령의 위세가 아니다.

윤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했다면 나 전 의원은 애초 출마할 마음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분고분하게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려 했을 것이다. 떡을 양 손에 쥐고 저울질할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대통령이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이 모든 게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정치 문외한'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누가 봐도 무리한 윤 대통령의 당무 개입이 총선 공천권 행사 때문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말 잘 듣는 당 대표가 있어야 공천 낙하산을 마음대로 투척할 수 있다는 심산이다. 벌써부터 여의도엔 윤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검사 명단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2016년의 '진박 감별사' 논란과 '옥새들고 나르샤'를 방불케 하는 공천 파동이 눈에 선하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측근을 내리꽂고, 이를 거부하지 못하는 집권당에 박수 칠 국민은 없다. 역대 총선에선 선거를 이끄는 리더십의 건강함이 승패와 무관치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내년 총선에 정권의 운명이 걸려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총선에서 지는 길로 달음박질치고 있다. 국민의 눈에는 앞날이 환히 보이는데 대통령만 눈을 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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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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