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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월호와 같은 길", 정작 누가 만드나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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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선 안 된다"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염장을 질렀지만 그 말은 바로 자신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와 동일시하게 만든 것은 정부와 여당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유족들을 경원시 하는 행태는 그대로 판박이다. 오히려 세월호 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이 이태원 참사 대응 수법은 더 교묘하고 악의적으로 변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태원 참사 책임이 헬러윈 축제를 즐기러 간 당사자들 책임이라는 주장이다. 놀러갔는데 무슨 국가 책임이고, 정부 책임이냐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천재지변을 포함한 모든 재난은 개인 책임이 된다. 일할 때든, 놀러 갈 때든, 여행을 갈 때든 국가는 모든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 것은 헌법이 정부에 부여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정부는 한사코 국가 책임을 부인했다. "교통사고가 무슨 정부 책임이냐"는 인식이 팽배했다. 결국 사법 책임은 구조에 나선 말단 경비정장에게만 물었다. 이태원 참사는 다른가. 한 달이 넘었지만 누구 하나 단죄되는 사람이 없다. 현장 책임자는 수사 부실로, 정부 책임자는 대통령의 감싸기로 꿋꿋이 버티고 있다. "책임이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묻는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로 재난의 구조적 책임은 길을 잃었다.

제대로 열릴지조차 불투명한 이태원 국정조사도 대통령실은 처음부터 극구 반대했다.  여론조사에 떠밀려 고육지책으로 수용하긴 했지만 지금도 마뜩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실세 윤핵관이 "국정조사는 애초 받지 말했어야 했다"고  푸념하겠는가. 윤 대통령은 여태껏 온전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근저에는 경찰이 수사해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당사자만 처벌하면 된다는 법만능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취임 이후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라고 여러 차례 말한 거는 그저 해본 소리였을까.

참사 유가족들에 대한 기피와 조롱은 세월호 때와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한 번만 만나 달라"는 유족들의 요청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그러자 "자식 팔아 돈 번다"는 막말과 혐오가 쏟아지고, 급기야 단식투쟁하는 유족 앞에서 폭식을 하는 야만적 장면까지 연출됐다.  윤 대통령도 만남을 요청하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에 묵묵부답이더니 때맞춰 "나라 구하다 죽었느냐"는 막말이 뒤를 잇는다.

거꾸로 책임을 회피하는 꼼수에서는 '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참사 다음날 곧바로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를 차렸다. 일체의 책임 추궁을 입막음 하려는 술수였다. 정부 대응 실패를 얘기하면 "지금은 추모의 시간"이라며 몰아세웠다. 진상을 규명해야 할 '골든타임'은 그렇게 속절 없이 흘러갔다. 희생자와 참사란 단어는 정부 내에서 금기어였고, 이름과 사진 공개 주장은 재난을 정쟁화 한다는 비난을 뒤집어썼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족들은 죄인처럼 자식 잃은 슬픔을 삭여야 했다. "애들 놀러가는 것도 막지 못한 부모"라는 손가락질로 숨죽이며 지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유족들은 급기야 서로를 수소문해 모임을 꾸리고 목소리를 냈다. 49재를 맞아서야 자식들 얼굴을 내밀고, 이름을 부르며 마음껏 통곡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수 차례 특검과 위원회를 거쳤지만 8년이 지난 아직도 진상을 완전히 밝혀내지 못했다. 참사 초기 정권이 수사를 방해하고 국정조사를 무산시킨 탓이다. 이태원 참사도 다르지 않다. 지금처럼 윤석열 정부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두고두고 정권의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윤핵관 말처럼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지 않으려면 현 정권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윤 대통령부터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부터 갖기 바란다. 당장 유가족을 만나고 대국민사과문을 내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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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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