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사과'의 진정성
이혜훈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가 내란 옹호 전력에 대해 사과했지만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됩니다. 내란이라는 국가적 중대사에 분명히 자신의 견해를 밝혀 놓고 1년도 안돼 입장을 바꾼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그가 이재명 정부의 핵심 장관으로 발탁되지 않았어도 태도 변화가 있었을까 생각하면 권력을 얻기 위한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의심은 여전히 남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남은 기간 그에 대한 끊임없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후보자는 30일 내란 옹호 논란에 대해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라며 "당시에는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간의 지속적인 윤석열 탄핵 반대 입장에서 돌변한 셈인데, 그 이유를 실상을 몰라서라고 해명했습니다. 국회의원 3선까지 한 중진 정치인이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몰랐다는 건 솔직한 답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고 있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계엄의 위법성을 몰랐다"며 책임을 회피한 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12·3 내란' 이후 이 후보자의 언행을 보면 '확신범'에 가깝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난 1월 17일 자신이위원장인 국민의힘 서울시 중구성동을 당원협의회를 이끌고 탄핵반대 집회를 개최했고, 1월 21일에는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윤석열 구속에 반대했습니다. 3월 22일에는 극우성향 단체 집회에 참석해 "이재명이 추진한 30건의 탄핵 시도는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내란 행위"라며 탄핵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이 후보자 말대로 "판단 부족"이나 "분위기에 휩쓸린 것"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후보자가 "당파성에 매몰돼 사안의 본질과 국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의 실체를 놓왔음을 솔직히 고백한다"고 한 말도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2002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노른자인 서초에서만 3선을 했고 원내부대표,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사무총장, 새누리당 수석최고위원 등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수십 년간 보수정당에서 온갖 권력을 누리며 활동하고는 '당파성'이란 말로 눙치는 건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의 정치 이력은 2020년부터 내리막길을 향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중진의원 험지출마 방침에 따라 서초를 떠나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했다 낙선했고, 2022년에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충북도지사 경선에 나갔다 탈락했습니다. 지난해 총선에선 서울 중구·성동을에 출마했다 낙선하는 등 연이은 실패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최근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동혁 대표 체제에서 첫 실시된 전국 당협 당무감사에서도 평가가 좋지 않아 위원장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재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이 후보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칠하더라도 새로운 권력을 찾기로 결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외연 확장을 꾀하는 이재명 정부에 적극 화답함으로써 개인적 활로를 열자는 계산입니다. 이 후보자가 이달 중순 유튜브 등 본인의 SNS를 관리하는 지인에게 기록을 전부 지워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이 도는 걸 보면 이재명 정부 합류를 위해 일찌감치 정체성 세탁 작업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듭니다. 전형적인 보수시장경제론자로 줄곧 시장원리와 재정 건전성을 주장했던 그가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을 최일선에서 구현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진보진영과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는 이 후보자의 내란 사과에도 그의 자격에 여전히 의문을 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친윤 행보'를 해오고 자유시장 경제를 주장했던 인사가 장관 지명 이후 사과했다고 해서 내란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이 될 자격이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이 후보자가 이런 의문에 대해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이 대통령도 말한 "국민의 검증"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란 사태로 인한 정권 교체 후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위기가 사라졌다고 낙관하기는 이릅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지금의 시대적 사명은 보수정치가 극우화되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 거세진 장기 추세를 중단시키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재명 정부 5년은 한국 사회가 역사의 기로에 선 시간으로 이 5년이 실패한다면, 다음 역사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진단합니다. 👉 칼럼 보기
[국제칼럼] 유럽과 한국의 캔슬 컬처
최근 문제적 연예인들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엄히 묻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양상입니다. 송지원 영국 애든버러대 교수는 개인을 사회에서 제거하기 보다는 윤리적 일관성과 공적 책임을 요구하는 유럽과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집단적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한 개인을 소모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과는 의무가 되지만, 용서와 회복은 거의 허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 칼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