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는 윤석열을 못 버렸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석열 최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에 지명하면서 이번 인사에 윤석열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당초 문형배·이미선 두 재판관이 18일 퇴임하더라도 대통령몫인 만큼 한덕수가 후임을 지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미임명 상태인 마은혁 후보만 임명한 채 당분간 7인 체제를 유지할 거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예상을 깨고 한덕수가 무리수를 둔 것은 윤석열과의 교감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번 인사가 한덕수의 독자적 판단이 아니라는 점은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한덕수는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대통령의 중대한 권한에 대해서는 행사를 자제하라는 것이 헌법정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통령몫 헌법재판관 지명은 대통령의 중대한 권한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뒤집은 셈입니다. 더구나 헌재는 한덕수 탄핵 기각 선고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자로서 국무총리는 대통령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위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한덕수가 약속을 번복하고 헌재 결정까지 거스른 데는 외부 압력이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한덕수가 윤석열과 친분이 두터운 이완규를 선택한 것도 의심스런 대목입니다. 이완규는 윤석열과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 동기로 윤석열 장모 등 가족사건 대리인을 맡았을 정도로 막역한 '친구' 사이입니다. 법제처장 때는 번번이 윤석열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내렸고, 비상계엄 선포 후에는 대놓고 윤석열과 내란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게다가 이완규는 계엄 직후 삼청동 안가 회동 당사자로 내란사태 동조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른 인물입니다. 숱한 후보들 가운데 굳이 뒷말이 나올 이완규를 택한 배경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상계엄 전부터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완규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임명할 것이라는 말이돌았습니다. 윤석열은 파면됐지만 이번 인사로 윤석열의 뜻이 그대로 관철된 셈입니다. 정치권에선 이런 정황으로 미뤄, 윤석열이 직접 한덕수에게 의견을 전했거나 대통령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표명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대통령실이 윤석열의 의중을 전달하는 통로라는 의심은 최상목 대행 때도 여러차례 제기됐습니다. 한덕수는 어떤식으로든 윤석열의 뜻을 전달받고 이를 곧이곧대로 이행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주목되는 건 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 나온 '한덕수 대선후보설'입니다. 한덕수가 민주당의 부당한 탄핵 공세에서 살아돌아온 서사를 갖췄다는 점에서 '이재명의 대항마'로 적격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주장은 주로 친윤계를 중심으로 거론되는데, 일각에선 한덕수가 헌법재판관 지명으로 야당의 탄핵소추를 유도한 뒤 자진 사퇴해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한덕수의 그간 행적으로 보면 이런 시나리오가 터무니 없지만은 않습니다. 한덕수는 내란이 실패하자마자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같이 국정운영을 주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당시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윤석열을 법적 근거도 없이 제쳐놓고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권력욕을 드러냈습니다. 정치적 욕심을 가진 한덕수가 이번 인사를 통해 윤석열과 친윤 세력의 지지를 얻어 대선에 뛰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 초대 총리인 한덕수는 국정 실패의 공동책임자입니다.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총리로서 윤석열에게 한마디 직언도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영혼없는 관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온 인물이 내란 사태 국면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한덕수는 아직 윤석열을 버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윤석열을 이용해 더 큰 꿈을 꾸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한덕수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이유가 이번 인사로 하나 더 늘었습니다.

윤석열 파면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넘겼지만 허약한 단면도 드러냈습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 구조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내란세력을 청산하지 않는 한, 한국 민주주의는 상시적 위기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거라고 전망합니다. 파시스트를 키우는 교육제도, 수구 정치집단을 유지해주는 정치 지형, 지역주의의 3중의 암초에 걸려 있다는 진단입니다. 👉 칼럼 보기
[강준만의 화이부동] 윤석열, '보수'를 죽이고 '중도'마저 죽이나
윤석열 정권의 파국에는 국민의힘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국민의힘은 공적 조직이자 제도로서 윤석열의 일탈을 견제해야 할 책임이 있었지만 포기함으로써 계엄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최악의 파국을 불러들였다고 말합니다. '강한 권력에 대한 맹종'이나 사적 의리를 앞세우는 부족주의적 문화와 체질이 국민의힘의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 칼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