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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설' 커지자 정부가 돌연 잠잠해졌다

이충재
이충재
- 7분 걸림 -

최근 미국발 북한 도발 경고가 잇따르지만 정부가 이례적으로 침묵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립니다. 신년들어 북한은 대남 위협의 강도를 한껏 끌어올리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정부 대응은 한달 전만해도 연일 '강 대 강'을 공언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맞불 대응이 '한반도 리스크'를 높여 경제를 어렵게 하고 결국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는 여권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국가 안보정책이 선거를 의식해 오락가락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관계자들이 북한이 몇 달안에 한국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고 25일 보도했습니다. 다수의 전문가들도 북한이 한반도에서 의도적으로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낮지만 국지적 도발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고 전했습니다. 국내 안보전문가들도 서해나 육상의 접경지역에서 북한의 도발과 남북충돌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전망합니다. 북한도 남한을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신무기시험을 계속하면서 위협 수위를 높이는 모습입니다.

기이한 것은 이전과는 다른 우리 정부의 신중한 대응입니다. 대통령실과 안보당국에선 미국에서 나오는 '한반도 전쟁설'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수중 핵 어뢰 시험 등에도 이렇다할 대응이 없습니다. 군 당국은 28일 북한이 여러 발의 전략순항미사일을 발사하자 "북한의 추가 징후와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고만 밝혔습니다. 이런 소극적인 대응이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한 일관된 전략이면 모르겠으나 얼마 전까지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던 터라 종잡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달 말에는 사흘 연속 북한을 향해 '말 폭탄'을 쏟아냈습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압도적 대응"을 지시하고 국무회의에선 "북한정권에 더 큰 고통"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정부측 인사들도 "세계 최강의 핵무기 국가인 미국과 일체형이 돼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등 '전쟁 불사'를 방불케하는 강경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올들어서는 윤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단 한차례만 응징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이마저도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결이 달랐습니다. 신 장관은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같은 날 방송에서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군 당국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설정된 육상 완충구역에서의 훈련을 당장은 재개하지 않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 군은 앞서 북한군이 지난 5∼7일 사흘 연속으로 NLL 인근 해상 완충구역에서 포병 사격을 하자 해상은 물론 육상 완충구역 내 훈련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방침에 따라 해상에선 6년 5개월 만에 해상사격 훈련이 재개됐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군 당국은 돌연 일제히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정부 안팎에선 이런 태세 전환의 배경으로 한반도 리스크가 가져올 경제적 악화가 총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새해들어 국내 금융시장은 전쟁 리스크 고조로 주가 추락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한국 증시와 동조화 현상을 보이던 미국 증시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은 디커플링(탈동조화) 흐름이 굳어지는 모양새입니다. 정부의 증시부양 총력전도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권에선 총선의 핵심 이슈가 경제문제가 될 거라는 인식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금리, 고물가에 수출 부진으로 가뜩이나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한반도 전쟁위험이 커지면 경제가 크게 악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과거의 외환·금융 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은 총선에서 여권에 직격탄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남북 간 긴장 완화에 주목한 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이 안보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아닌 총선 승리를 위한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거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된 안보문제를 선거와 연관시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대응이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조변석개하게 되면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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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