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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석열 정부, 권력에 취한 징후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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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부산에 기항 중인 미국 해군의 전략핵잠수함(SSBN)에 승선한 사진에서 유독 눈길을 끈 건 대통령과 나란히 선 김건희 여사였다. 윤 대통령의 나토 순방에 동행하고 귀국한지 이틀 만이다.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 논란으로 한동한 자숙할 거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한 마디 해명이나 사과 없이 갑자기 등장한 곳이 미국의 핵잠수함이라니 더 당황스러운 것이다.  

지금 김 여사가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면 그 장소는 수해 현장이다.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수해민들의 손을 어루만지고 구슬땀을 흘리는 장면만으로도 송구스러움을 표현하는 메시지가 된다. 그런데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일정조차도 잡지 않은 것을 보면 김 여사와 대통령실이 얼마나 국민의 감정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지도층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건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있다는 얘기다.

사실 김 여사가 리투아니아에서 명품 쇼핑을 했는지, 아니면 호객행위로 끌려들어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출국 직전까지 자신의 일가 땅과 관련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으로 들끓는 민심을 생각했다면 개인적 호기심 충족 따위의 행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 집중호우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국민이 뭐라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윤 대통령에게서도 권력에 취한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수해 대책을 논의하는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환경부에 '격노'를 쏟아냈다. 이태원 참사 때는 경찰, '주69시간' 파문에는 노동부, 수능 킬러 문항 혼란에선 교육부에 퍼부었던 그 격노다. 윤 대통령의 노여움과 분노는 늘 아래를 향한다.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여기는 듯한 태도다.

기록적 수해에 자리 비운 윤 대통령, 남탓만
김 여사는 양평고속도로 의혹에도 순방 쇼핑
장관, 여당, 지자체장 등 집권층 총체적 해이
유한한 권력보다 국민의 심판 두려워하길

윤 대통령은 "지지율이 바닥까지 떨어져도 할 건 하겠다"는 말을 자주한다. 지지율에 일희일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담겼겠지만 마치 여론과 싸우겠다는 말로도 들린다. 국민 다수의 뜻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 독선과 독주가 된다. 국민 85%가 반대하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기시다 총리 앞에서 찬성한 데서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오기가 느껴진다. 물난리 재난 상황에 우크라이나행을 강행한 것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는 이미 집권세력 전체에 퍼져 있다. 수많은 주민들의 편익이 걸려있는 양평 고속도로 건설을 일순간에 내팽개친 장관이나 수해 현장에서 "대통령님이 화나셨다"는 여당 대표 눈에는 오로지 대통령만 보일뿐이다. 전국적인 수해 우려 상황에서 골프를 치고도 되레 "내가 뭘 잘못했냐"고 성내는 자치단체장의 행태에서도 권력에 눈 먼 여권의 맨얼굴이 또렷이 나타난다.

권력에 도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은 죄다 아랫사람들에게 돌아갔고, 그나마 줄줄이 풀려나는 중이다. 이번 수해도 볼 것도 없이 하급 실무자들에게만 책임을 지울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각자도생이 최선책이다. 도청과 시청, 경찰과 소방 등 오송지하차도 참사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악다구니가 어디서 비롯됐겠는가.

집권 2년차는 안정된 국정 기반을 토대로 개혁의 속도를 내는 시기이지만 반대로 집권층이 권력의 과실을 따먹으며 부패와 비리의 싹을 틔우는 때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권의 현재 모습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고 저마다 권력을 누리기에만 바빠 보인다. 나라를 제대로 이끌겠다는 각오와 다짐은 없고 오로지 대통령 심기 경호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급기야 지도층에 실망한 국민들은 '무정부 상태'를 외치고 나섰다. 국가적 재난에 정부가 안 보인다고 한다. 지금은 권력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대통령의 권력보다 국민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국민은 영원하다는 걸 모른다면 정부를 이끌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윤석열 정부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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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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