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명 죽으면 윤석열 살아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판결로 윤석열 대통령이 한시름 놓은 건 분명해 보인다. 가슴을 짓누르던 탄핵의 먹구름이 다소 옅어지고, 야당의 전열도 흩어질 거라는 생각에서다. 눈에 가시같은 이재명의 곤경을 지켜보며 속으로 흐뭇해할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무엇보다 자신의 계산이 맞았다고 무릎을 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검찰이 반드시 이재명을 단죄할 구실을 만들어낼 거라는 믿음이 그렇다. 검찰 수뇌부를 마음에 드는 인물로 바꾸고 나니 이재명을 옭아맬 혐의를 고구마줄거리처럼 찾아내지 않았는가. 그 많은 기소중에 어느 것 하나는 '골인'될 거라는 기대는 현실이 됐다.
어차피 사법부는 검찰이 기소한 것만 판단하게 돼있다. 검찰이 어떻게든 만들어낸 공소장을 보고 유무죄를 가릴 뿐이다. 검찰 기소의 타당성 여부와 정치사회적 맥락, 판결이 미칠 파장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사법체계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윤석열이다.
여기까지는 윤 대통령의 예상이 맞아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세상은 윤석열 마음대로 돌아갈까. 이재명이 죽으면 윤석열은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윤 대통령의 위기가 이재명으로 생긴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윤석열 스스로 초래하고 잉태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국정 성적표는 절대평가지 남의 잘잘못으로 매겨지는 상대평가일 수 없다. 대통령을 포함해 집권세력이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지금의 처참한 상황이 나아질 리 만무하다.
이재명 판결 이후 나타난 여권의 모습을 보자. 용산 대통령실은 더 기세등등해졌다. 정무수석이란 사람은 기자의 질문에 '무례'라는 표현을 썼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나온 기자의 질문은 국민을 대신한 것이니 전 국민을 상대로 예의가 없다고 꾸짖은 셈이다. "대통령 골프가 왜 문제가 되느냐"는 경호처 차장의 답변도 염장을 지른다.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몰라서 하는 말인지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윤석열 위기, 이재명 초래한 것 아냐
대오각성 없으면 尹 심판 빨라질 것
각 부처는 윤석열 정부의 성과를 자랑하는 자료를 앞다퉈 뿌렸다. 국토교통부는 부동산시장이 정상화됐다고 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 R&D 예산 역대최대 규모 편성을 성과로 내세웠다. 기획재정부는 물가안정과 가계부채 연착륙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영끌' '빚투'가 만든 사상 최대 부채는 뭐고, 지난해 R&D 예산 대폭 삭감으로 과학계를 초토화시킨 이들이 누군가. 가뜩이나 생활고에 지친 서민들의 화를 돋우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국민의힘은 마치 경사라도 난 듯하다. 한동훈 대표는 연일 "이 대표 법정구속될 것" "민주당 434억 토해내도 안 망한다"며 조롱에 열을 올린다. 용산을 향한 친한계의 삿대질도 일제히 멈췄다. 겉으로는 민생을 외치지만 여당의 가장 큰 관심은 한동훈 가족 댓글 당원게시판 논란이다. 친윤은 이 기회에 한동훈을 쫓아내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한동훈은 자기 죽는지도 모르고 이재명만 외치는 꼴이다.
이런 태평성대가 없다. 대통령은 골프 치고, 참모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정부는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자랑하고, 여당에는 모처럼 웃음꽃이 폈다. 금술잔의 좋은 술과 옥쟁반의 맛좋은 안주에 흥청망청하는 탐관오리를 비판한 '춘향가'와 뭐가 다른가.
이재명 판결 후에도 여권 지지세가 치솟지 않는 것은 국민의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대통령 하차를 요구하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주말마다 도심에선 탄핵 집회가 열린다. 그럼에도 중도하차 여론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중도층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였다. 윤석열 탄핵이 이재명 집권으로 이어질 거라는 보수층의 우려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재명이 어려워진다고 판단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분노한 민심은 곧바로 윤석열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집권세력이 끝내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의외로 심판의 순간은 빨라질 수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환호작약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