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이충재인사이트
  • 이충재칼럼
  • 지난 인사이트
  • 공지 사항

[칼럼] 이 대통령 뜻, 누가 왜곡하나

이충재
이충재
- 6분 걸림 -

하루 만에 원상으로 돌아갔지만 이른바 '더 센 특검법'이 여야 합의로 무산됐다는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한 이들이 적지 않다. 특검 수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수사 인력 충원도 최소화한다는 합의 내용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지금 국민들은 연일 새롭게 터져나오는 윤석열· 김건희 국정 농단 소식에 분노하는 한편으로, 특검이 그 숱한 의혹을 규명할 수 있을지 조바심치고 있다. 짧은 기간과 부족한 인력으로 수사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생기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그런 터에 나온 '3대 특검법' 개정안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갑자기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국민의 뜻에 위배하는 합의를 했으니 황당한 것이다. 합의 조건도 터무니 없다. 야당이 금융감독위원회 설치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게 고작이다. 내란 사태와 윤석열 부부 전횡을 밝혀내는 것과 금감위 설치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나. 사안의 성격은 물론이고 두 가지를 동격으로 취급하는 것부터가 집권여당이 맞느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말썽이 일자 민주당 지도부가 전날 여야 합의를 '1차 협의'라고 발뺌했지만 이미 한심한 인식 수준을 드러냈다.

그나마 합의 번복이 지지층의 빗발치는 항의 때문이었다니 어처구니 없다. 상식 이하의 합의를 해놓고 반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말끝마다 '국민 주권'과 '당원 중심'을 외치면서 일반적인 국민의 정서조차 파악하지 못했음을 실토한 셈이다. 더 기막힌 건 합의에 앞서 민주당에서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의 역대급 망언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는 점이다. 바로 전날 "이재명 대통령도 정청래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정 대표 연설에 "제발 그랬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대꾸한 송 원내대표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낸 게 민주당 아니었나.

국회의원 제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할 때는 언제고, 몇 시간 만에 동일인과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악수할 때는 해야 하는 게 정치라지만 이런 급변침에 납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늘상 있는 법안 다툼이 아니라 내란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되레 '내란 정당'이라고 비난하던 국민의힘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처지가 되지 않았나.

특검법 논란 빚은 여당의 한심한 인식
민주당 지도부 갈등, 이 대통령에 불똥
여권 균열은 보수진영에 좋은 먹잇감

눈 여겨 볼 건 민주당이 특검 수정안을 덜컥 수용한 배경이다. 이번 사태 책임을 둘러싸고 당대표와 원내대표 간에 서로 사과하라며 삿대질이다. 정 대표는 김병기 원내대표가 협의없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고 주장하나 김 원내대표는 사전에 협의를 했다고 맞서고 있다. 경위야 어떻든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집권여당의 투 톱이 긴밀하게 상의하지 않았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당내에는 두 사람이 주요 현안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는 말이 돈다. 거대 여당 지도부의 갈등과 균열이 국정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이런 양상은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당장 이 대통령이 11일 기자회견에서 "저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데 몰랐던 일"이라고 밝혔듯이 화살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 이 대통령이 며칠 전 여야 회담에서 협치를 강조하며 여당에 더 큰 양보를 강조한 게 이번 합의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협치와 야합은 다르다"면서 "특검법 개정안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이견도 우려스럽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두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면서 의견이 모아지기는커녕 생채기만 커지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입법 과정은 정부가 주도하자"고 입장을 밝혔지만 여당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민주당 지도부의 며칠 전 설전은 밖으로 드러난 일단의 모습일 뿐이다.

여권 내 갈등은 보수진영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주는 꼴이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연일 이 대통령과 정 대표 간에 이견이 있는 것처럼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여의도 대통령 정청래, 충정로 대통령 김어준'이라는 이간질 프레임까지 짜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100일밖에 되지 않았다. 다행이 이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견고한 편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에 균열이 있는 것처럼 비치면 지지를 철회할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집권세력 모두 자중자애하기 바란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이충재칼럼

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당신이 놓친 글
[칼럼] 이 대통령 속인 오광수
[칼럼] 이 대통령 속인 오광수
by 
이충재
2025.9.5
[칼럼] 한덕수, 끝난 게 아니다
[칼럼] 한덕수, 끝난 게 아니다
by 
이충재
2025.8.29
[칼럼] 김민석 총리의 뒤늦은 출격
[칼럼] 김민석 총리의 뒤늦은 출격
by 
이충재
2025.8.22
[칼럼] 이춘석, 터지길 잘했다
[칼럼] 이춘석, 터지길 잘했다
by 
이충재
2025.8.8
당신이 놓친 글
[칼럼] 이 대통령 속인 오광수
by 
이충재
2025.9.5
[칼럼] 이 대통령 속인 오광수
[칼럼] 한덕수, 끝난 게 아니다
by 
이충재
2025.8.29
[칼럼] 한덕수, 끝난 게 아니다
[칼럼] 김민석 총리의 뒤늦은 출격
by 
이충재
2025.8.22
[칼럼] 김민석 총리의 뒤늦은 출격
[칼럼] 이춘석, 터지길 잘했다
by 
이충재
2025.8.8
[칼럼] 이춘석, 터지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