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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건희 여사, 내리막길이 보인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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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선고는 김건희 여사가 광폭 행보를 보이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 재판부가 '돈줄' 역할을 한 사람에게 유죄를 내려 김 여사가 빠져나갈 여지는 거의 없어졌다. 아무리 검찰 수뇌부가 봐주려 해도 이 엄연한 사실을 피하기는 어려울 터다. 기껏 할 수 있는 게 김 여사 사건 처리를 가능한 늦추는 것일 게다.

김 여사에 대한 불리한 판결은 재판부의 엄정함뿐 아니라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검찰 수사팀의 공정함에 기인한 바 크다.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씨가 주가조작으로 20억 넘는 수익을 올렸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도, 1심에서 무죄가 난 전주에게 '방조범' 혐의를 추가해 김 여사를 옭아맨 것도 일선 수사팀이었다. 검찰이라고 해서 모두 윤석열 정권의 '부역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시민위원회가 김 여사 명품백 사건에 면죄부를 주려는 검찰에 제동을 건 것도 달라진 환경을 보여준다. 당초 일사천리로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려던 검찰로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교사 택시운전사 회사원 등으로 구성된 시민위원회의 생각은 대통령 부인이 수백만 원의 디올백을 거리낌 없이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검찰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공고한 성채 같던 김 여사의 지위는 균열이 생기는 조짐이 뚜렷하다. 김 여사의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을 증언한 당사자들은 여당 의원들이다. 머지않아 이를 뒷받침할 물증이 공개되고, 다른 공천 개입 사례도 터질 거라는 말이 여의도에 파다하다. 이 말고도 김 여사가 인사와 정책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무수히 떠돌고 있다. 언젠가 차곡차곡 쌓인 화약이 한꺼번에 폭발할 순간이 다가올 거란 예감이 든다.  

김 여사는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싸늘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검찰이 명품백을 무혐의 처분할 거라는 것만 믿고 외부 행보를 부쩍 늘렸다. 그간 자신을 짓누르던 시름을 훌훌 벗어던진 듯하다. 대통령실에선 향후 김 여사 활동 계획을 줄줄이 세워놨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간이 부족해 제2부속실 설치를 못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 말에서 이제 김 여사가 대통령실의 넓은 공간에서 직원들을 부리는 광경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도이치모터스 2심 결과, 김 여사에 올가미
김 여사, 아랑곳없이 대통령 행세 광폭행보
선출되지 않은 권력 행사, 최순실과 유사

"대통령 행세한다"는 비아냥이 나온 119한강구조대 '시찰'은 그 단면이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이날 김 여사 사진은 최근 윤 대통령이 참석한 어느 행사보다도 많다. 누군가의 승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용산 내 역학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행위다. 앞으로 김 여사의 활동이 소외된 계층 위로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적 기관의 정책 수행을 점검하고 나무라고, 지시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야당이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에는 김 여사 혐의로 8가지가 적시돼 있다. 도이치 사건과 명품백, 공천 개입에 이어 코바나콘텐츠 뇌물성 협찬,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구명 로비, 장·차관 인사 개입 등 나열하기도 벅차다. 역대 영부인 가운데 이토록 많은 의혹과 비리에 연루된 경우가 있었나 싶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고개를 숙이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인데, 김 여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사유의 핵심인 헌법 질서 훼손에는 최순실의 국정 관여가 큰 몫을 차지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배후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세한 책임을 엄중히 물었다. 같은 논리로 국민이 뽑은 건 대통령이지 배우자가 아니다. 배우자로서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이를 빙자해 대통령에 준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건 선을 넘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돼 김 여사가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한다며 안타까워 한다고 한다. 김 여사로 인해 상처 받고 불편해 하는 국민 다수의 심정은 안중에 없다. 배우자의 월권을 막지 못한 책임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지금 보수진영에선 윤석열 정권이 좌초되면 상당 부분은 김 여사 때문일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강구조대원들과 찍은 사진 속 김 여사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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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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