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검찰에 또 당할 순 없다
오광수 민정수석 의혹에 대한 보수언론의 태도는 의아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 문제를 공격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인데도 의외로 조용하다. 취임 초기의 '허니문' 기간을 의식해서일 리가 없다. 그 배경으로 '검찰개혁'을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진보진영에선 그의 특수부 검사 경력이 검찰개혁에 장애가 될 거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보수언론으로선 오 수석이 한가닥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법하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호시탐탐 이재명 정부의 실책을 주시하는 상황에서 오 수석 의혹은 훌륭한 먹잇감이다. 그런데도 언론에 보도된지 한참 지나서야 대변인 명의 논평을 내는 데 그쳤다. 당 내부 집안싸움에 정신팔린 탓으로 보긴 어렵다. 국민의힘 역시 검찰개혁과의 상관관계를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다.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의 이런 기형적 태도는 앞으로 진행될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의 강도를 예상케 한다. 큰 싸움에 대비해 작은 이해는 포기하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더불어민주당이 11일 발의한 검찰 수사·기소 분리법안 추진이 본격화되면 검찰과 손잡고 일대 반격에 나설 게 뻔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신설 때 보인 극렬한 반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 보수정권은 늘 검찰과 한편이었다. 수구 기득권 카르텔끼리 서로 이익을 공유하며 한통속으로 지내왔다. 보수 정치세력은 검찰을 정권의 안전판으로 활용했고, 검찰은 그 대가로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해왔다. 윤석열이 검찰총장 때 "이명박 정부가 검찰에 가장 중립적이었다"고 칭찬한 데서도 그 공고한 유착구조의 단면이 드러난다.
검찰-언론-보수정당의 저항에 당해
이재명 정부에서 미완의 꿈 이뤄야
검찰개혁은 항상 진보진영의 아젠다였다. 선출되지 않은 최강의 권력인 검찰의 힘을 빼지 않고서는 무너진 정의를 바로세울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보수 기득권 세력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진보정권이 검찰을 정권의 방패막이로 쓰지 않고 중립성을 보장해주겠다는 데도 반대했다. 검찰은 보수세력의 전유물이니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놔두라는 거였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권력이 커진 검찰은 '보복'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검찰과 보수 정권의 합작품이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조국 사태'를 낳았다. 노 전 대통령은 사후저서 '운명이다'에서 "대통령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으리라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당시 검찰총장은 "내 목을 먼저 쳐라"고 강하게 반발했고, 윤석열은 검찰개혁에 앞장설 것처럼 속여 검찰총장이 되고는 문재인 정부에 정면으로 칼을 겨눴다.
지금도 검찰은 눈앞에 다가온 '검찰 해체'를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가리지 않을 태세가 돼있다. 당장 급한대로 동원한 전략이 새 정부 눈치보기다. 이 대통령이 상설특검을 언급하자 부랴부랴 '세관 마약 밀수' 특별수사팀을 꾸린 게 단적인 예다. 대검이 낸 입장을 보면 가관이다. "해외 마약 밀수조직에 대한 세관 직원 연루 의혹이 제기된 초유의 사건이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중대 사안"이라며 태연하게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2년 동안 온갖 의혹이 제기될 때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건을 은폐했던 게 검찰 아닌가.
검찰 내에서는 "이재명도 정권을 잡기 전과 후가 다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막상 칼자루를 쥐게 되면 그 위력을 실감하고 검찰에 의존할 거라는 기대다. 이런 망상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그 다음 단계는 집단행동이다. 기수별 성명과 검사회의 개최 등 항명을 불사하며 여론을 호도해온 게 그간 검찰이 써온 수법이다.
검찰개혁은 이제 세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노무현·문재인에게 검찰개혁은 필생의 꿈이었다. 그 미완의 꿈을 이재명이 이어받은 셈이다. '검찰독재' 체제를 청산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높고 정치적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이 대통령이 꼭 완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