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구의 분노, 이유 있다
대구시민들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여당 후보로 예상되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국민의힘 후보 누구와 대결해도 이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힘에선 여론조사 응답을 꺼리는 '샤이 보수'가 많아서라고 하지만, 그 용어는 불리한 쪽에서 사용하는 언어다. 유권자들이 지지 의사를 당당하게 밝히지 못할 만큼 국힘의 결함이 많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지역민들의 분노는 이유가 있다. '8전 8승'이라는 결과가 말해주듯 대구시민들은 1995년 민선 이후 치러진 대구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계열 정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어줬다. 지방선거뿐 아니라 총선과 대선에서도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자존심, 5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모든 선거를 지배했다. 보수 정당이 아무리 미워도 "한번만 도와달라"고 고개숙이면 투표장에서 손이 저절로 그쪽으로 쏠렸다고 대구시민들은 말한다.
그렇게 해서 돌아온 건 참담한 현실이다. 지역경제는 쇠락하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있다. 이명박이 되든, 박근혜가 되든 달라진 건 없었다. 생산과 소득, 취업 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다른 지역보다 뒤쳐진지 오래라는 사실을 비로소 대구시민들은 깨닫고 있다.
그나마 국힘이 잘할 거라는 기대가 있으면 다를 텐데, 당은 깊은 늪에 빠져 있다. 박근혜를 수사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은 건 상처 입은 보수의 자존심을 살려달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윤석열은 무능과 독선으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더니 황당한 비상계엄으로 보수 전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런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한 채 허우적대는 국힘을 지지하기에는 더 이상 명분이 없다고 많은 대구시민들은 생각할 것이다.
유권자 자존심 무너트린 국힘의 난장판 공천
이재명 정부 정책 효능감에 달라진 대구 민심
최근 국힘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파동은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대구시장 여론조사에서 1,2위를 차지하는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과 6선의 주호영 국회부의장을 쳐낸 건 유권자들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국힘 공관위원장은 시장 공천에 탈락한 이진숙을 대구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심을 것처럼 말했다. 누구를 어느 곳에 꽂아도 뽑아줄 거라는 오만함이 대구시민들을 분노케 한 것이다. 심지어 주호영 공천 탈락이 대구시장 출마로 생기는 지역구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꼼수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대구 유권자들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무기력한 보수 정당에 대한 실망감 말고도 정부와 정책의 효능감을 알게 됐다는 게 큰 차이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구는 지난해 대선에서 유권자의 24%만이 이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 그런데 1년도 되지 않아 이 지역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두 배로 상승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나라가 바뀌고, 국민의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전국 선거에서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이고,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지자체 재정·행정에 대통령과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대체적인 인식은 '생각보다 일 잘하는 대통령'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같은 소속 정당의 후보가 되는 게 지역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대구시민들이 할 법하다.
대통령 재임 기간 치러지는 선거는 흔히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다. 정권심판론이 작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야당 심판론'이 더 크게 먹히게 됐다.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은 국힘이다. 대구시민들의 선택을 예단할 수는 없으나 대구 유권자들은 이번엔 국힘에 매서운 회초리를 들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그런데도 국힘은 이를 깨닫지 못한 채 공천 다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구시민들이 원하는 건 그리 큰 게 아니다. 침체에 빠진 지역을 살리기 위한 비전과 의지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구 시민들이 잘 먹고 잘 살게만 해달라는 것이다. 6·3 지방선거의 승패는 어느 정당이 그 요구를 실현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여당의 대구시장 후보로선 그 어느 때보다 유리한 환경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