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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이치모터스 수사 검사들의 '반란'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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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분 걸림 -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지만 1심 선고 만을 앞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판에서 꽤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논란이 되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개입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더 기이한 것은 이런 정황을 수사 검사들이 폭로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검찰이 김 여사 소환을 미루는 등 사건 축소에 급급하다고 알려졌는데 내부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간이 지나면 미세한 틈새가 커다란 구멍으로 바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검사들이 재판에서 공개한 김 여사의 직접 개입 정황은 구체적이다. 지난해 12월 2일 공판에서 검사는 "김 여사가 2010년 11월 1일 직접 자신이 거래하는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서 매도 주문을 했다"고 밝혔다. 김 여사 측이 2010년 5월 이후 손해만 보고 나왔다고 한 해명이 엉터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여사의 주식 현황과 계좌 내역을 정리한 '김건희' 파일이 발견된 사실도 검사의 증인 심문 과정에서 밝혀졌다.

주가조작의 주범 격인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김 여사에게 정보를 알려줬다는 것도, 김 여사가 계좌를 작전 세력에게 맡기기만 한 게 아니었고, 그들과 절연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모두 검사들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심지어 검사가 작성한 주가조작 사범들의 공소장 범죄일람표에는 '김건희' 이름이 284차례나 적혀있다. 이런 정황들은 증권사에서 주식 거래 주문 시 자동으로 녹음되도록 한 전화 내용을 근거한 것이라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이치모터스 재판에는 4~5명의 수사∙공판 검사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의 행위에서 짚이는 게 있다. 비리와 범죄를 있는 그대로 밝혀내 단죄해야 한다는 소신에 따른 결단이라는 거다. 그 것이 정권의 힘이 빠질 때를 대비한 것이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기소하지 않은 직무유기에 대한 방어이든 관계없다. 중요한 건 그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에서 검사가 직접 김건희 주가조작 개입 정황 '폭로'
현 정권 힘 빠질 때 대비해 증거 남기려는 의도인 듯
尹, '뭐라도 잡아내기 위한 수사'라며 가이드라인 제시

진실을 쫓는 검사들의 본분은 진영과도 무관한 일이다. 가령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출금 의혹 사건은 한 검사의 공익제보에서 비롯됐다. 그 검사는 "성접대 의혹은 규명돼야 하지만 적법절차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가 외압을 행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주가조작 수사 검사와 불법출금 제보 검사 모두 권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과 원칙을 지켰다는 면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권력자와 이에 충성하는 '정치 검찰'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조국 장관 내정자 수사가 개시된 이후 몇 년이 넘도록 제 처와 처가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망신까지 줘가면서 수사했다"고 말했다. 검찰총장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의혹을 수사하자 문재인 정부가 자신의 처가를 겨냥한 '보복 수사'를 벌였다는 얘기다. 여당에서도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는 다르다. 문재인 정부 검찰은 윤 대통령 말대로 처가 의혹을 탈탈 털 듯 수사하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당시 검찰 지휘부에 배치된 정권에 우호적인 검사들이 지시를 해도 막상 중간에서 끊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윤석열 총장이 유력한 대권 후보로 떠오른 상황에서 제대로 파헤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임은정 대구지검 부장검사는 "김 여사 소환 얘기가 몇 년 전부터 나왔는지 모른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윤 대통령일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처가 수사를 '뭐라도 잡아내기 위한 수사'라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로 대통령에 오른 이가 지금은 가족 비리에 "적당히 하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윤 대통령의 오른팔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8개월째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윤석열 사단'으로 채워진 검찰 수뇌부는 오로지 상대 진영 수사에만 열을 올린다.

그러기에 도이치모터스 수사 검사들의 행동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이들이 곳곳에 심어 놓은 '다잉 메시지'는 언젠가 진실을 밝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신임 검사들이 다짐하는 검사 선서에는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가 되는 데 명예를 걸겠다"는 대목이 있다. 인권과 정의의 가치 수호는 검찰의 존립 이유다. 기개있는 검사들의 '반란'에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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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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