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차라리 尹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라"
국민의힘(미래통합당)에게 지난 21대 총선은 악몽으로 남아있다. 수도권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며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을 내줬다.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패배 후 '공천 반성문'을 썼다. "다시는 이런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냈다는 공천고백기에서 김 전 의장은 두 가지를 패인으로 들었다. 변화를 요구한 민심에 부응하지 못한 것과 변화의 고삐를 쥐고 갈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표심이 변화를 선택했고 변화를 거부한 정당을 심판했다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3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힘은 어떤가. 그때와 달라진 것은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이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당으로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기는커녕 오히려 퇴행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변화를 이끌 리더십도 실종된 상태다. 더 심각한 것은 당의 뒷걸음질을 이끄는 주축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1년 여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이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게 절체절명의 선거인 것은 맞다. 특히 취임 후 여소야대의 장벽을 뼈저리게 느낀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 승리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의 패배는 곧 정권의 레임덕으로 이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임기 5년을 빈 손으로 마감한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보이지 않는 위력을 행사하는 건 이런 연유에서다. 표면적으론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뒤로는 콩놔라 배놔라 하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우아하게 수면에 가만히 떠 있는 것 같아도 물밑 두 다리는 쉴 새 없이 발버둥 치는 물새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런 정당하지 않은 행태가 당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윤 대통령은 모르는 듯하다.
혁신, 비전 안 보이고 오로지 '윤심팔이' 충성경쟁 뿐
퇴행적 행태로 민심 멀어지는데 총선 이길수 있겠나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요지경이다. 유력한 후보들이 차례로 사라지는 광경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민심에서 가장 앞서는 주자를 갑작스런 경선 방식 변경으로 거세하더니 이제는 당심에서 선두에 나선 주자마저 주저앉히려 한다. '민심'과 '당심'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윤심'만 좇으라는 거다. 어떤 후보처럼 "눈빛만 보면 대통령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정도는 돼야 한다는 거다.
대통령실과 '윤핵관'이 벌이는 무지막지한 횡포의 배경으로 '이준석 트라우마'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대통령과 여당이 한 몸이 돼야 국정이 순탄하고 성과를 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돼서 성공한 경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여당이 정부보다 나은 점은 민심을 넓게 파악하고 대변한다는 건데, 국민보다 대통령을 위에 놓으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익히 봐온 터다.
사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는 이준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MZ세대와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이준석의 공이 컸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그를 보수정당 사상 최연소 당 대표로 만들어 준 이들은 국민의힘 당원들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오로지 그의 '싸가지 없는 태도'가 못마땅해 내쫓았다. 유승민, 나경원을 '제2의 이준석'으로 치부하는 것도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대선 때 돕지 않아서다. 따지고보면 원내대표 시절 '빠루'를 들고 설치던 '보수 여전사'가 국민의힘에서 왕따로 전락하는 장면은 코미디나 다름 없다.
지금 국민의힘의 면면을 보면 박근혜 탄핵 당시로 되돌아 간 모습이다. 그새 보수개혁을 주장했던 이들은 당을 떠났거나 찬밥신세다. 그 빈 자리를 검찰 출신의 윤 대통령이 차지했고, 이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누구 말대로 대통령은 5년 지나면 사라지지만, 당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혁신도 비전도 사라지고 남은 건 대통령 충성경쟁뿐이다. 이러니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차라리 당 대표를 윤 대통령이 지명하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