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1년' 싸우기만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늘 화난 표정이다. 얼굴엔 불만과 분노가 가득 차 있다. 웃는 모습을 언제 봤나 생각해보니 거의 떠오르는 게 없다. 최근 미국 국빈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를 때 만면에 번진 미소가 유별나 보였다. 그런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호통을 치고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불안을 안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 누군가와 항상 싸웠다. 검사 때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한 터다. 그에게 사람은 적 아니면 아군이다. 그렇게 나누는 게 쉽고 편안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좋을지 몰라도 상대방은 불편하고 억울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가를 이끌어갈 지도자라면 무책임한 행동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이전 정권과 야당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 지지층 결속을 위한 의도적 싸움걸기였다. 전방위 수사와 압수수색, 기소는 일상화 한 풍경이 됐다.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은 아직도 한창이다. 무차별적인 싸움의 대상은 여당도 예외가 아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누구나 적으로 간주된다.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 등이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싸움을 걸어 성과를 내려는 전략은 약자에게 더 강하게 적용된다. 가장 만만한 게 생존의 경계에 선 노동자들이다. 걸핏하면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며 집단린치를 가한다. 졸지에 '건폭'으로 내몰린 노동자가 분신으로 목숨을 잃은 지경에 이르렀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규명해 달라는 유족들에게 빈소를 옮기라며 싸움을 걸고,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는 장애인들에게 지구 끝까지 찾아가 사법처리하겠다고 몰아부친다.

모든 사안을 적과 내 편의 이분법으로 갈라치기
전 정권, 야당, 언론, 노동계에 의도적 싸움 걸어
외교마저 실리가 아닌 진영 대결의 장으로 활용
이제 대화, 타협, 공감, 연대를 국정 전면 세워야

윤 대통령의 선악 이분법은 외교마저 헝클어놓았다. 협상과 국익의 무대인 국제관계를 진영화된 신냉전 체제로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주변 강대국들을 죄다 적으로 돌려놓고 우리가 얻고자 하는 이익이 무엇인지 윤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없는 것 같다. 배타성을 전제로 한 '가치동맹'이 한국에 치명적 타격을 가져온다는 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역대 모든 대통령이 공유한 사실이다. 외교라는 게 전쟁이 아닌 실리를 얻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과라는 걸 윤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

지난 1년 내내 윤 대통령이 싸워서 얻은 성과는 참혹하다. 대선 때 득표한 48%의 지지율은 30%대로 쭈그러들었다. 보수층 일부와 중도층이 떨어져 나갔고, 청년들도 등을 돌렸다. 협치는커녕 칼을 휘두르기에 바쁜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거대야당의 입법 강행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노동계는 총파업에 정권퇴진 투쟁까지 입에 올리고, 교수들과 성직자들의 시국 선언은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밖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보복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그토록 죽고살기로 싸운 결과가 안팎으로 반대 세력만 늘린 셈이다.

윤 대통령이 진정 싸워야 할 상대는 경제와 민생이다. 그가 허깨비와 싸우는 동안 나라 경제와 서민들 가계는 손쓸 방도가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양극화는 역대 최대 규모로 벌어졌고,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에 따른 경제위기도 심각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진심을 갖고 경제위기와 싸우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서민들과 고통을 나눠지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려는 노력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해봤는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싸우는 데 너무 많은 기력을 소비했다. 싸움에는 체력이 필요한 법인데, 윤석열 정부는 벌써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적을 너무 많이 만든 때문이다. 남은 4년을 무슨 동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방향을 수정할 것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수정해야 할 것은 대화, 타협, 공감, 연대, 포용과 같은 언어를 국정의 전면에 두는 것이다. 선혈은 낭자한 데 얻는 건 없고 손해만 나는 싸움을 이젠 멈추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