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순방에 재계 총수 또 '들러리' 세우나

윤석열 대통령이 9월 체코 방문에 또 재계 총수들을 동행키로 하면서 '들러리' 논란이 다시 불거집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해외순방 때마다 유독 재계 총수들을 많이 데려갔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겁니다. 재계에서도 뚜렷한 이유도 없는 잦은 순방 동행에 압박감을 느낀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일각에선 권력과 기업 간의 새로운 정경유착 유형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의 다음달 체코 방문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경제사절단에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대차 그룹에선 정의선 회장을 대신해 장재훈 사장이 동행한다고 합니다. 윤 대통령의 체코 방문은 신규 원전 건설이 주요 현안인데, 양국이 무역촉진 협정을 체결하면서 재계 총수들을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재계에선 체코와 무역규모와 사업 진출 전망 등을 고려할 때 굳이 재계 총수들을 데려갈 필요가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결국 윤 대통령이 자신의 성과로 포장하기 위해 기업 총수들을 들러리 세우는 것 아니냐는 얘깁니다.

윤 대통령의 재계 총수 동행은 구체적인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윤 대통령은 그간 해외를 18번 나갔는데, 절반 가까이 기업인들과 함께 갔습니다.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각각 7차례 동행했고, 구광모 LG 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은 각각 6차례 따라다녔습니다. 김동관 한화 부회장은 5차례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재계 총수들을 해외 순방에 동행시키는 경우가 있었지만 윤 대통령처럼 빈번하지는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재계 총수 동행은 재임기간을 고려할 때 문재인정부보다 4배 정도 많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재계 총수 해외순방 동행의 성과에도 의구심이 제기됩니다. 윤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을 데리고 나간 해외순방때마다 MOU(양해각서) 체결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체결된 MOU 가운데 실제 이행된 건 10%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계에선 경제사절단 모집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체코 방문과 관련해 대통령실에선 "경제사절단은 주관단체에서 모집, 선정하는 데 체코의 경우 대한상의에서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경제사절단 선발은 아예 MOU 체결 건수를 염두에 두고 모집한다는 게 기업들 주장입니다. 해당국가와 비즈니스 성과가 기대되거나 MOU 체결이 예정된 기업 등이 우선 선정된다는 겁니다.  

윤 대통령의 재계 총수 동원은 해외순방뿐만이 아닙니다. 국내 주요 현안과 관련해서도 걸핏하면 손을 내밉니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재계 총수들을 '떡볶이 먹방'에 이용한 게 대표적입니다. 당시 총선을 몇 달 앞두고 부산 민심이 흔들리자 대통령실이 재벌들에 SOS를 쳤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파행으로 끝난 세계 잼버리 대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대기업들에 도와달라고 요청해 기업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지원에 나섰습니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기업들을 마구잡이식으로 동원할 수 있는 건 그만큼 혜택을 베풀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첫해 광복절 특사에서 이재용 회장과 신동빈 회장을, 지난해 광복절에는 이중근 부영그룹 창업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기업총수들을 대규모 사면·복권해줬습니다. 수백억대 횡령과 배임, 상습도박 범죄자들이 모두 사면복권됐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법인세 등 기업들을 위한 감세는 물론이고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공시기준 완화 등 친재벌정책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과 재벌 간의 새로운 형태의 정경유착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정치와 대기업의 지나친 유착이 부정부패로 이어졌던 사례가 많아서입니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정부의 특혜에 길들여지다보면 국제적 경쟁에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윤 대통령으로서도 이런 행태가 자신이 강조하는 '자유'와 '시장경제'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재벌을 병풍삼아 정치행위를 계속할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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