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2천명 늘린다더니 3천명 줄어들 판

의정 갈등 장기화 여파로 내년에 배출되는 신규 의사가 올해보다 약 3000명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의대생들이 대거 휴학을 택하면서 의사 국가시험에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규 의사 공급 차질로 전공의는 물론 군의관, 공중보건의 수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게다가 전공의 이탈로 내년도 신규 전문의 배출 절벽도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의료현장에 투입될 의사 배출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피해는 국민과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계에선 무리한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의사를 늘리기는커녕 대폭 줄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당국 집계에 따르면 내년 1월에 치러질 의사 국가 필기시험 응시자는 304명에 불과합니다. 올해 1월에 치러진 의사 국가시험에 3212명이 응시한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내년도 의사 국가시험을 봐야 했던 본과 4학년이 대거 휴학을 택하면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의사 국가시험은 임상실습 기간을 채운 의대 졸업자나 졸업 예정자가 합격했을 때 면허를 주도록 돼있습니다. 정부가 의사 국가시험 추가 시행을 하려해도 임상실습 기간 부족으로 자격을 충족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의사 신규 배출 중단이 부를 파장은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상당수는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 수련 과정을 밟게 돼있어 전공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집니다.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에는 특정 과목의 전문의 자격 취득을 위해 전문의 시험을 보게 돼 있어 자연스럽게 전문의 공급도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결국 향후 전문의 공급도 2000명 이상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당장 올해 전공의들의 이탈로 내년도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자도 올해(2782명)의 20% 수준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에도 집단 휴학 중인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의 복귀 전망이 어둡다는 점입니다. 최근 의대생 단체들은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는한 내년에도 휴학을 지속하기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의대생 단체에선 내년에 입학하는 신입생들도 상급생들의 집단 휴학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의대생 선배들이 휴학중인데 신입생들만 수업에 참여하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입니다. 의대생들 복귀로 7500명이 한꺼번에 수업하는 '난장판'도 걱정이지만 내년에도 의대 교육이 올스톱되는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내년도 의대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의대생과 전공의를 비롯해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한 의사단체들까지 2025년 의대 증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선 의사단체들이 내년도 증원 백지화를 주장하지만 내심은 최소화를 바라고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구체적으로 수시모집 추가합격자선발을 제한하거나 정시모집으로 이월하지 않는 방안 등이 거론됩니다.

정부는 입시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정부가 관련 법령을 개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교육부는 지난 17일 의정협의체 회의에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재변경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 제·개정 등이 필요해 요구안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뒤집어 말하면 법령을 바꾸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됩니다. 교육전문가들은 1993년과 1996년 한의대생 수업거부로 집단유급 사태가 빚어지자 정부가 관련 법령을 개정해 이듬해 입시에서 대학별 모집정원을 감축한 전례를 근거로 듭니다.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입학을 정지하거나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내년 의대 증원 철회가 어렵다면 감축을 주장할 가능성도 열어놓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부가 증원에 대해 최소한의 성의있는 조치를 취하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돌아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2000명 증원규모 발표로 촉발된 의료대란 사태는 전 국민의 불안을 초래했습니다. 더 이상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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