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가 윤석열", 그게 부끄러운 것
예상대로 국민의힘이 27일 추경호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특검 수사가 부당하다고 여긴다면 당당히 표결에 참석해 부결표를 던지는 게 맞았다. 자신은 떳떳하다며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언하던 추 의원도 표결에 응하지 않았다. 다수당의 횡표에 맞선 정당한 행위라고 포장하기엔 낯뜨겁다. 지난해 12월 3일 불법 비상계엄 해제 국회 표결에 대다수 국민의힘 의원이 참석하지 않은 게 윤석열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추 의원 구속 여부 결정이 하필이면 '비상계엄 1년'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 계엄 이슈를 피해가려 해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제부터 일주일 간 국민의힘은 매일 계엄과 내란, 윤석열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온갖 모호하고 두루뭉술한 수사를 동원해 위기를 넘기려 하겠지만 그럴수록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다.
장동혁 대표부터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비상계엄 1년을 맞아 메시지를 발표하겠다고 예고는 해놨는데, 도무지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추 의원 영장이 기각되면 더 강력한 대여 투쟁 돌입을 선언하고, 발부되면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터다. 촉박한 일정을 감안하면 자칫 두 개의 성명서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장 대표는 속을 끓이겠지만 정작 국민 절대 다수는 무관심하다. 어차피 국민의힘이 돌변해서 "윤석열과 절연하겠다"고 나설 일은 없겠어서다. 이미 내년 지방선거까지 당이 지향할 방향은 분명해졌다. 강성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해 세를 공고화한 뒤 중도층 공략에 나선다는 거다. 야심차게 기획한 장외 집회 장소가 TK·PK 등 보수세가 강한 지역을 중심으로 짜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집회 도중 즉석 연설의 표현도 한층 거칠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존재 자체가 대한민국의 재앙"이라며 '히틀러' '독재자' 같은 원색적인 말을 쏟아낸다. 한 장외 집회에서는 "이재명 사주받은 쥐새끼들"이란 말도 했다. 이 대통령을 때리면 극렬 지지층이 환호할 거라는 자기 나름의 믿음에 기초한 전략일 것이다.
윤석열 절연 못하고 이재명·여당 때리기 몰두
장동혁에 보수 가치와 미래 기대는 언감생심
현 시기에 집토끼 먼저 전략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건 정치 문외한이라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장 대표가 잘못된 판단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장 대표는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장 대표가 차기 대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건 여의도의 공공연한 사실이다.
'자기 정치'에 골몰하는 건 장 대표뿐이 아니다.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는 당의 현 상황에 심드렁하다. 자신들의 명줄이 달린 총선은 아직 한참 남았고, 지방선거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국민의힘에서 그나마 사과와 반성을 얘기하는 이들은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극소수와 지방선거 재선을 노리는 일부 광역단체장들뿐이다.
당의 존립보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윤석열은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 정권을 뺏기고, 당을 망친 윤석열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윤석열을 부여잡는 건 '윤어게인' 세력에 붙어 정치 생명 연장을 꾀하려는 안간힘이다. 그런 국민의힘에 보수의 가치와 미래를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장 대표는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부끄러운 것'이란 연설로 일약 대표에 당선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패대기 쳐지는데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 "대통령을 지키자고 했던 장동혁을 향해 배신자라고 부르는데 그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장 대표는 최근 장외 집회에서 그때를 떠올리듯 "저들이 우릴 공격할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판했는데 그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가 진짜 부끄러워할 것은 따로 있다. 내란 사태에 반성도 사과도 않고, 윤석열과 단절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래서 국민에게 분노와 실망을 안겨주는 자신과 국민의힘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하긴 그 걸 알면 국민의힘이 이렇게까지 바닥을 드러내게 됐을까 싶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