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명의 투표권이 박탈당했다

6·3 지방선거에서 경쟁 없이 당선이 확정되는 무투표 당선자가 5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면서 수백만명에 달하는 유권자 투표권이 박탈당했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공직선거법상 무투표 지역으로 확정되면 '선거운동 중지 명령'이 내려집니다. 후보자는 벽보 게시나 공약 발표 등 일체의 선거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해당 지역 유권자들은 자신이 뽑는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이 누군지도 모를뿐더러 후보를 선택할 기회조차 빼앗기게 됩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선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하는 비정상적 선거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번 무투표 당선자 가운데는 경기 시흥시장과 광주 서구청장, 남구청장 등 3명이 포함됐습니다. 수도권 핵심 대도시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경기 시흥시 인구는 51만명에 달합니다. 광주 서구(27만명)와 남구(21만명)까지 합치면 100만명 가까운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시장과 구청장을 맞아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여기에 광역의원 108명, 기초의원 305명도 선거를 치르지도 않고 당선됐는데, 선거구로는 모두 307곳이 해당됩니다. 선거구당 1만명씩만 잡아도 300만명의 투표권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무투표 당선 제도의 가장 큰 맹점은 후보자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 지역에 전달되는 선관위 공보물에는 무투표 당선자의 정책과 약력, 선거 공약은 없고 무투표 실시 안내문만 담기게 됩니다. 선거공보는 후보를 알리는 소개서고 공약은 그 후보가 우리 앞에 내미는 계약서인데, 무투표 당선자의 정책과 공약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민단체들은 무투표 당선자라도 정보 공개는 의무화하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최소한의 유권자 선택권 보장을 위해 찬반투표 실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이 자질을 검증해 부적격한 후보에 대해서는 탈락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형적인 무투표 당선의 가장 큰 원인은 선거구에 있습니다. 현재 시·도광역의원 선거에서는 소선구제를, 시·군·구 기초의회는 2~4인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광역의원은 지역구를 작게 묶어 1명씩만 뽑는 소선거구제여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거대 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기초의회의 경우 소수정당이나 여성, 장애인 등 다양한 정치 세력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2006년부터 중대선거구제가 도입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 양당의 꼼수로 취지가 퇴색되는 상황입니다.

'선거구 2인 쪼개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초의회 지역구는 광역의회가 심의해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4인선거구로 할 수 있는 지역을 2인선거구 2개로 분할하는 것이 관행이 됐습니다. 2인선거구가 되면 양대 정당이 1석씩 나눠 가지거나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영남에서는 국민의힘이 2석을 모두 차지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어차피 2인선거구에서 양당이 나눠먹을 게 뻔하니 군소정당 후보들이 선거 비용 등을 걱정해 아예 후보 등록을 포기하게 되고, 이로 인해 무투표 당선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이런 추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됐습니다. 대구시의회는 지난달 4인선거구 8곳중 7곳을 2인선거구로 쪼개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써 대구는 수성구의 한 선거구를 제외하고는 4인선거구가 전부 2인선거구로 쪼개졌습니다. 역시 국민의힘이 강세인 경북에서도 노골적 2인선거구 늘리기가 이뤄졌습니다. 민주당이 강세인 호남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전남도의회는기존 4인선거구인 여수시 마선거구를 2인선거구 2개로 쪼개는 조례개정안을 확정했습니다. 소수정당들이 반발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2인선거구 유지·확대는 국민평등권과 선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인구비례 회복에 대한 2018년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시하는 행태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최근 "일부 시도의 선거구 변경 행위는 법률의 입법 취지를 몰각한 것"이라며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선 거대 양당의 독식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초의원을 비례대표 체제로 바꾸거나 중대선거구제 확대,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등이 거론됩니다. 무투표 당선은 100% 거대 정당의 책임으로 정당정치가 엉망이 됐다는 방증입니다. 6·3 지방선거가 끝나는대로 정치권은 퇴행적이고 왜곡된 지방선거 제도 개정 논의에 즉각 착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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