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한동훈의 정치는 틀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닮은 점이 많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사시에 합격, 검사의 길을 걸었다. 특수부 선후배 검사로 얽힌 두터운 친분이 나란히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배경이 됐다. 정치와 정치인을 보는 시각도 대동소이하다. 정치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 행위이고 정치인은 대다수가 음모론만 일삼는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여긴다. 국민들로부터 정의의 수호자라는 인증을 받았으니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정치판의 거악을 척결하면 모두가 환호할 거라는 단순함이 그들의 정치 참여 명분이다. 범죄자 소탕은 자신들이 전문가이니 정치도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오판이 깔려 있다.
그런 착각의 결과가 총선 참패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5년 임기내내 여소야대 상황을 만든 건 윤석열과 한동훈의 무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선거를 진두지휘한 그들이 선거를 '깨끗이' 말아먹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정치 검사' 출신의 두 사람이 대화와 타협, 조정의 예술인 정치를 너무 우습게 본 탓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은 한결같이 그랬다. 정교하게 접근해야 할 국가적 현안을 무조건 저질러놓고 윽박지르는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노동과 대형 참사, 언론 등 국내 현안은 물론 한일∙남북 관계 등 외교안보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당 길들이기와 야당 탄압도 그런 식이었고, 심지어 경제와 민생 분야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특수부 검사가 구속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별건수사로 몰아붙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패인은 정치를 특수부 수사하듯 한 것
한동훈, 정치 밑바닥부터 다시 배워야
총선 국면을 관통한 정권심판론을 달군 것도 윤 대통령이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외압을 덮고자 이종섭 전 호주대사를 출국시킨 건 최소한의 정무적 감각조차 결여됐다는 방증이다.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와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감싸기는 또 어떤가. 내로남불과 위선을 탓하기 이전에 리더로서 자질과 능력 부족을 드러낸 것이다.
한동훈의 가장 큰 패착은 정치에 너무 겁 없이 뛰어들었다는 데 있다. 윤 대통령의 뒷배로 여당 대표를 맡기는 했으나 애초 깜냥이 안 됐다. 지난 몇달 간 한동훈에게서 기억나는 건 '이∙조 심판론'과 거친 말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정치를 개같이 한다"고 했지만 그야말로 정치판을 적대와 혐오의 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되도 않는 '동료 시민'과 '공공선'이라는 말로 국민을 현혹시킨 것도 무능을 덮으려는 술수였던 셈이다.
국민의힘으로선 한동훈은 신기루에 불과했다. 반전의 드라마를 쓸 것으로 기대했지만 의석 수로 따지면 김기현이나 한동훈이나 차이가 없다. 한동훈이 아니라 그 누구더라도 가능한 일이었다. '아바타 한동훈'에겐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용기도 배짱도 없었다. 보수진영은 그에게 참신하다는 찬사를 보냈지만 실은 '정치 문외한'에 대한 착시 현상이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11일 미리 짠 것처럼 같은 시간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국민 뜻을 받들어 국정 쇄신"을, 한 위원장은 "국민 뜻 받들어 비대위원장 사퇴"를 언급했다.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발언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직접 나와서 고개를 숙인채 대국민사과를 해야 했고, 한동훈은 자신의 실패 요인을 조목조목 밝혔어야 했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결정적 공통점은 정치를 잘못 배운 것이다. 정치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이제 깨달았을 것이다. 한동훈은 정치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밑바닥부터 배우지 않으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치인의 말로는 언제나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