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 대통령, '석고대죄'해야 할 때다
4·10 총선 캠페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대통령 퇴진론 분출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금기로 여겨졌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발언이 야권 인사들에게서 거침없이 쏟아진다. '정권 조기 종식' '3년은 너무 길다' 등의 슬로건도 귀에 익숙해졌다. 예전 같으면 '탄핵'이란 말이 나오기 무섭게 역풍이 불었을 텐데 이 조차 잠잠하다.
희한한 장면은 여당에서도 목격된다. 총선 후보들로부터 대통령 탈당 요구가 나오고, 내각 총사퇴도 거론된다. 정권심판론이 강하게 불면서 격전지 후보들 공보물에선 윤 대통령 얼굴이 사라졌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 했듯너도나도 대통령과의 관계를 숨기려 한다. 아무리 선거 전망이 어렵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을 지우는 것은 이전 선거에선 볼 수 없던 광경이다.
선거 앞두고 벌어지는 여당의 기이한 모습은 난파선을 연상케한다. 침몰 직전의 배에서 서로 살겠다고 탈출하는 군상들의 아수라장과 다를 바 없다. 윤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리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등을 돌리는 모습에선 권력의 무상함마저 느껴진다.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사실상의 '레임덕' 상태라는 거다. 집권 2년이 채 안 된 대통령이 임기 말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건 심각하다. 권력은 한 번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대통령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고, 국정은 표류한다. 국민도 국가도 불행한 일이다.
여당서도 탈당과 내각 총사퇴 거론 이례적
민주주의 퇴행 막으려면 선거로 심판해야
사태가 이 지경인 것은 윤 대통령을 빼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취임 후 모든 국정 운영의 전면에 선 당사자가 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조언을 무시한 채 독선적 사고에 빠져 일을 그르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불통의 상징처럼 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주도한 것도,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에 면죄부를 준 것도,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불문에 부친 것도 전적으로 윤 대통령이 결정한 일이다.
윤 대통령이 맞고 있는 권력 누수는 그간의 실정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다. 국민 마음속에 누적된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누적돼 임계점에 달했다는 신호다. 경제 관련 회의를 수십 차례 주재하면서도 민생은 뒷전이었다는 게 '대파 소동'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감당도 못할 의대 증원 2000명을 줄곧 밀어붙인 것도 바로 윤 대통령 아닌가. 그러고도 대국민담화에서 51분간 자화자찬을 늘어놨으니 국민들 울화만 키운 셈이다.
국민들이 더 화나는 건 윤 대통령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그간 윤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기억은 손에 꼽힐 정도다. 그것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가 아니라 마지못해 하기가 일쑤였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에 대한 빗발치는 여론에 '아쉽다'는 한 마디로 뭉갠 걸 보라. 대선 후보 때 전두환 찬양 발언으로 물의를 빚자 키우던 개에게 사과를 먹이던 사진을 SNS에 띄우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의 안하무인 격 행태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선거다.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라고 만들어 놓은 수많은 제도와 장치를 윤 대통령이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시행령 남발과 잦은 거부권 행사, 인사청문회 무시 등으로 우리 사회가 어렵게 구축해온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더 이상의 퇴행을 막기 위해선 선거를 통한 심판밖에는 없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윤 대통령의 석고대죄를 많은 국민은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