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한덕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파면 후 사저로 돌아간 윤석열의 언행을 보고 '겁 먹은 개가 제 집에서는 짖는다'는 속담이 먼저 떠올랐다. 복귀 후 주민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한 말이 딱 그렇다. 밖에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으니 집에 와서 허풍을 떠는 것이다. 그 기저에 깔린 심리는 패배자가 갖는 불안과 초조, 공포 같은 것일 게다.
지금 윤석열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지지자들이 떠나는 것이다. 그들이 없으면 내란 재판에서 최고형을 면하기 어렵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힘들다고 윤석열은 믿고 있다. 누군가를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들은 '추앙'하는 존재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힘이 빠진 권력자에게 기대고 의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랴. 권력이 사라지면 곁에 있던 사람도 떠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요즘 윤석열 주변의 풍경이 이를 일깨운다. 최근 윤석열 사저 앞에는 극렬 지지층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이 한남동관저에서 짐을 빼던 날, 일부 지지자들이 몰려왔던 게 마지막이다. 탄핵 전 주말마다 도심을 휩쓸던 극우집회 참석 인원도 확 줄었다. 파면 후 처음 열린 지난 주말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은 확연히 기가 꺾이고 위축된 모습이었다.
윤석열 집을 찾아오는 방문객도 뚝 끊겼다. 한남동관저에 있을 때만 해도 국민의힘 의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파면 후에는 거의 찾는 사람이 없다. 위로차 방문할 법도 한 지인들도 들르지 않아 썰렁한 분위기라고 한다. 냉정한 현실을 마주한 윤석열은 혼자 격노하며 분을 삭이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입안의 혀처럼 굴던 친윤계도 변침을 시작했다. 윤석열 내란 옹호의 최전선에 섰던 나경원, 홍준표도 대선 후보가 되더니 태세전환에 들어갔다. 언제는 윤석열을 영웅처럼 떠받들더니 이젠 표를 달라며 중도층에 애걸하는 모양새다. 머지않아 당이 살려면 윤석열을 출당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게다.
지지자들 확연히 줄어 권력무상 느낄 것
한덕수 대선 출마 저울질 바탕은 권력욕
윤석열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지만 그게 업보다. 윤석열은 어쩌다 얻은 권력을 마치 자신의 능력과 자질로 얻은 것처럼 함부로 휘둘렀다.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렸던 건 권력 그 자체가 두려워서였는데, 윤석열은 자신이 뛰어나서라고 착각했다. 이제 윤석열에겐 점차 '현타'의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권력을 잃은 폭군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는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한다.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한덕수도 바탕에 깔린 건 권력욕이다. 평생을 이 정권, 저 정권에 붙어 온갖 좋은 자리를 차지해온 그에게 대선은 권력을 연장할 절호의 기회로 여겼음직하다. 어쩌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돼 윤석열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이 보수층의 지지를 얻자 딴마음을 먹게 된 것이다. 망신으로 끝난 윤석열의 친구 이완규 헌법재판관 지명 사태는 그 결정판이었던 셈이다.
그러고도 한덕수의 노욕은 멈추지 않는다. 하루는 호남을 갔다, 다음날은 영남을 가는 이유가 뭐겠는가. 단순한 '대통령 놀이'가 아니라 아예 대통령을 하려는 심산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관세협상을 서두르는 것도 속이 너무 훤히 드러나보인다. 국익에 손해를 끼치는 것보다 협상 타결을 성과로 포장해 대선의 꿈을 이루는 게 한덕수에겐 더 중해 보인다.
한덕수는 윤석열 밑에서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해왔다. 윤석열 정권의 실정에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할 장본인인데다 내란을 막지 못했고, 은폐를 묵인하고 동조했다. 그래놓고는 뻔뻔하게 대권까지 넘보고 있다.
윤석열이나 한덕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잊혀지는 것이다. 일생을 남 위에 군림했던 이들은 권력을 쉬 놓으려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반성과 성찰은 그들 사전에 없다. 이들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은 격리밖에는 없다. 윤석열뿐 아니라 한덕수도 법의 심판대에서 엄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권력에는 단맛뿐 아니라 쓴맛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재깍재깍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