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차라리 심신미약이라고 우겨라

내란 수괴 윤석열과 행동대장 격인 김용현의 대면은 한편의 잘짜인 연극을 보는듯했다. 애초 윤석열이 첫 증인으로 부를 때 예견된 것처럼 김용현은 윤석열을 결사적으로 옹호했다. 내란죄 핵심 증거인 '비상입법기구' 설치 문건과 포고령은 자신이 작성했고, 윤석열은 소수병력만 투입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지시했다고 감쌌다. 윤석열에게 책임이 돌아갈 진술은 쏙 빼놨다.  

윤석열은 이미 앞선 헌재 변론에서 김용현에 신호를 보냈다. '당신에게 모든 걸 떠넘겼으니 알아서 진술하라'는 의미였다. 이런 의도를 충직한 김용현이 간파하지 못했을리 없다. 당초 "(비상입법기구 문건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포고령을) 대통령이 검토했다"며 윤석열의 지시를 인정했던 김용현은 말을 180도 바꿨다.  

내란 사태에서 윤석열이 보인 일관된 행태는 '나부터 살자'는 거다. 내란의 하수인들이 일제히 그를 지목하는데 '모른다' '아니다'며 한사코 부인한다. 혐의는 내란죄 '우두머리'인데, 그 단어의 무게를 감당할 자격조차 없는 위인이다. 그의 지시를 따르다 감옥에 간 군경 지휘관들이 가슴을 치며 한탄할 일이다.

강렬한 생존 본능은 어떻게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도록 만든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거는 야당 때문이고, 공수처 수사는 불법이고, 법원도 못믿겠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어떤 불법을 저질러도 그냥 놔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지난 2년 반동안 귀가 아프도록 들은 말이 남탓이다. 국정이 흔들릴 때마다 윤석열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책망했다. 노동자와 시민단체를 몰아붙이고, 민주당과 이재명을 탄압하더니, 같은 편인 이준석과 한동훈까지 내쫓았다. 의료계와 과학계, 교육계 등 격노의 파편이 박히지 않은 곳이 없다.  

헌재서 만난 윤석열과 김용현, 입맞춘 흔적
끊임없이 책임 떠넘기고 남탓하는 행태 여전
'바보전략' 안 통하니 심신미약 주장 할지도

가장 압권은 언론과 국회가 '대통령보다 훨씬 강한 초갑(超甲)'이라는 궤변이다. 지난 2년 반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온 대통령이 '약자'라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비판 언론에 소송을 걸어 재갈을 물리고, '횟칼 테러' 협박이 나오게끔 했던 장본인이 할 말은 아니다.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거부권을 남발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패싱'한 사람은 또 누군가.

부정선거 음모론만 해도 그렇다. 총선, 대선에서 부정선거가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대통령으로서 문제를 제기할 수단과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한데, 그때는 뭐하다 이제와서 부정선거를 규명하려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펴는가. 법원은 물론이고, 국정원이나 방첩사 등 정보기관도 부정선거가 없었다고 결론내렸는데 극우 유튜버 주장에 심취해서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박근혜는 탄핵에 앞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지만, 윤석열은 무엇을 위해 대통령이 됐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그저 권력이 좋아서, 즐기고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 된 것 같다. 그런 윤석열에겐 애초 자괴감이나 부끄러움, 수치심 따위가 없다. 자성과 반성, 사과는 그의 용어가 아니다.

구치소에 갇힌 윤석열은 불현듯 '현타'가 온듯하다. 술도 못 먹고 유튜브도 못 보니 정신이 조금은 되돌아온 모양이다. 법률가 출신인 자신이 볼 때 대통령 복귀도 어렵고 재판에서 중죄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거다.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고 모른다고 시치미 떼는 '바보 전략'만이 살 길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하지만 '바보'라고 해서 법이 선처를 베풀지는 않는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형량을 줄여보겠다는 윤석열은 최후의 수단으로 심신미약을 주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음주와 주술에 빠져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고 우기는 거다. 그가 이미 과도한 알코올로 국정을 수행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을 거라는 얘기도 있었으니 잘하면 경감 사유로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차라리 그 전략이 나을 것도 같다. 계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많은 국민이 그래도 정상인이 아닌 '미치광이'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위안이 되지않겠나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