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명 대통령, 윤석열과는 달랐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첫날 일정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야당 대표들과의 오찬이다. 당선 전에 행사를 잡았을 리는 없으니 꽤 기민하게 움직인 셈이다. 격식이나 의제 따위는 제쳐놓고 일단 빨리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천하람 대표도, 김용태 대표도 제가 잘 모시겠다. 자주 뵙길 바란다"고 손을 내민 것도 신선해보였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만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낯선 광경으로 다가온 것 자체가 우리 정치의 기형적 모습을 환기시킨다.

윤석열은 제1야당 대표 이재명을 만나는데 2년이 걸렸다. 그것도 총선에서 참패한 뒤 뭐라도 해야겠기에 '억지춘향' 격으로 자리를 만들었다. 식사를 함께 하는 것도 꺼려서인지 찻잔만 덩그러니 놓인 자리였다. '반체제 세력'이자 정적인 야당과 얼굴을 마주하기도 싫었던 걸까. 그런 과대망상이 자가발전해 야당을 말살하려한 게 바로 12·3 비상계엄이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적으로 착각해 돌진하다 제풀에 꺾인 모습 그대로다.

윤석열 정부에서 정치란 아예 없었다. 한덕수 총리는 윤석열을 따라한다고 야당과 사사건건 싸우다 '버럭총리'란 별명을 얻었고, 용산 비서실장들은 만사 제쳐놓고 윤석열 심기경호하느라 바빴다. 대통령이나 부하들이나 국정을 챙기기도 부족한 시간에 야당을 어떻게 혼찌검을 낼지 골몰했으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 만무했다.

이 대통령이 다선의 국회의원을 총리와 비서실장에 앉힌 데는 정치를 복원하자는 뜻이 포함됐을 것이다. 윤석열이 내각과 대통령실 상당수를 검사와 관료 출신들로 채운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익숙한 인물들을 기용해 윤석열이 무너뜨린 정치를 국정 운영의 중심에 놓겠다는 의도다. "전쟁 같은 정치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인정하는 정치가 되기를 바란다"는 이 대통령의 말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읽힌다.

취임 첫날 야당 대표들과 오찬한 이 대통령
'실용주의'도 이념 치우쳤던 윤석열과 대조
윤석열의 오만, 불통 리더십도 닮지 말아야

지난 3년간 무너진 건 정치 뿐이 아니다. 경제는 추락했고, 민생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윤석열은 경제를 너무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민생경제를 살리겠다며 수십차례 '민생토론회'를 개최했지만 관권선거 시비만 일었지 실제 달라진 건 없었다. 애초 민생 위기에도 정부 지출을 줄이고, '낙수효과'를 되뇌며 부자들 세금을 깎은 결과다. 정책과 방향이 잘못됐는데 회의를 한다고해서 나아질 거라고 믿은 것부터가 한심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약속한대로 '비상경제 점검 TF'를 취임 1호 행정명령으로 발동해 심야 회의까지 열었다. 이튿날인 5일 열린 첫 국무회의에선 점심을 김밥 한 줄로 때우며 경제관련 회의를 이어갔다. 극심한 불황에 빠진 민생을 회복하는 것만큼 급한 일이 없다고 본 것이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이런 메시지는 민생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는 의미에서도 긍정적 신호를 준다. 대통령 취임 첫날 윤석열이 호텔에서 축하 만찬을 가졌을 때 국민들이 느꼈던 위화감과는 격이 다르다.  

윤석열은 출범 때부터 어떤 정부와 나라를 만들어 국민 삶을 향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상은 내놓지 않았다. 취임사에선 '자유민주주의' '반지성주의' 같은 철 지난 이념과 공허한 구호만 메아리쳤다. 그러더니 극단적 자유방임주의 이념에 경도된 사회경제 정책과 원리주의적 '가치 외교'로 나라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었다.

국회에서 조촐하게 거행된 취임식에서 이 대통령의 취임사를 관통한 단어는 '실용주의'였다. "낡은 이념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말했고,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도 했다. 이재명 정부에선 더 이상 국정이 편향적 이념과 도그마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지난 3년간 퇴행한 민주주의와 민생을 돌려놔야할 중차대한 과제를 안은 이 대통령의 어깨는 무겁다. 이를 완수하려면 무엇보다 윤석열의 잘못을 낱낱이 따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윤석열을 경험한 국민들은 그의 오만과 불통, 무책임한 리더십에 질려있다. 이 대통령이 무엇보다 윤석열과 달라야 할 것은 리더십이다. 윤석열과 반대되는 리더십만 발휘해도 못했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