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1년, 검사만 살판 난 나라

윤석열 대통령 당선 1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퇴행'이다. 국가의 모든 분야가 퇴보했고, 일상의 모든 것이 뒷걸음질쳤다. 정치는 유례없는 정당 민주주의 후퇴를 경험하고 있고, 경제는 선진국에서 유령이 된 신자유주의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사회적으론 억압과 공포의 신권위주의가 대중을 엄습하고 있다. 우리가 지켜온 민주주의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실감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역사의 회귀와 역행의 중심에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이 있다. 오직 검사만이 정의를 수호할 수 있다는 왜곡된 가치관에 찌든 '검사 엘리트주의자'의 전형이다. 스스로 유능하다는 착각에 빠져 도무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독선과 오만이 가장 큰 문제다. 국정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결과가 한국 사회를 지금 거대한 퇴행의 궤도로 몰아넣고 있는 요인이다.  

윤 대통령의 '검찰 만능주의'는 정부 요직에 검사 출신들을 중용하는 데서 확인된다. 권력·사정 기관을 비롯해 인사, 금융 분야까지 거칠 것 없이 촉수를 뻗는다. 수십 명의 전위대가 각 분야에 실핏줄처럼 퍼져 상명하복의 검찰 문화 이식에 앞장서고 있다. 이로 인해 타협과 조정은 사라지고 힘의 과시와 위협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

이런 모습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육법당(陸法黨)'을 연상시킨다. 육사 출신 군인과 법률가들이 손잡고 권력을 공유한 시대를 지칭하는데,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당시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정권을 지탱한 것은 검사 출신들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육법당 정권이 사라진 자리를 '검찰당(檢察黨)'이 장악했다는 점이다. 다른 집단과의 권력 분점이 필요없는 온전히 검찰만의 정권이 탄생한 셈이다.

윤 대통령의 검찰 중심의 통치는 여당을 향하고 있다. 8일 출범한 국민의힘 김기현 당대표 체제는 그 첫걸음이다. 윤 대통령이 김기현을 일찌감치 당대표로 낙점한 건 가장 만만해서였을 것이다. 대가와 거래를 매개로 한 익숙한 검찰 수사 기법을 보는 듯하다. 큰 빚을 진 김 대표로선 대통령실에서 내리꽂는 총선 공천 명단을 거부할 아무런 명분을 가질 수 없게 됐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대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시켰던 '유정회(維政會)'와 뭐가 다를 것인가.  

지난 1년 한국 사회는 거대한 '퇴행'의 궤도에 진입
군사독재 시절 '육법당' 연상시키는 '검찰당 정권'
윤 대통령 가족은 제외하고 다른 이들에게만 가혹
통치권자 자의적 권력행사 억제가 진정한 법치주의

윤 대통령이 위험한 것은 검찰 지배 체제를 '법치주의'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끝마다 법과 원칙을 내세우지만 사이비에 불과하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통치를 막고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준법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권력자 스스로 법과 원칙에 구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은 법의 예외로 남고 반대편에 서거나 순응하지 않는 이들에게만 법으로 제재하려 든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야당 수사와는 달리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의혹은 줄줄이 무혐의다. 검찰의 만능키 같은 압수수색은 유독 김 여사 앞에선 멈춰있다. 이와 관련된 수사 사항은 모두 기밀이란다. 미주알고주알 흘러 나오는 야당 대표 수사는 뭐란 말인가. 대장동 일당 수사는 탈탈 털면서도 검찰 출신 전관들이 연루된 '50억 클럽'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이러고도 법치주의를 입에 올릴 수 있나.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시장 경제도 검찰식 해법으로 형해화되는 양상이다. KT와 포스코 등 민간기업 최고경영자 인선에 개입하는가 하면 은행∙ 통신에 이어 다른 업종까지 손목을 비틀고 있다. 일부 강성 노조를 '기득권 카르텔', 건설 현장의 폭력을 ‘건폭’으로 몰아붙이고 엄벌을 공언했다. 왜곡된 관행을 낳은 구조를 개선하기보다 수사와 처벌이라는 검찰식 해법을 곧장 들이대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대표적 사상가인 고 박세일 교수는 "모든 것을 무조건 법대로 하는 것은 법률주의이지 결코 법의 지배, 법치주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진정한 법치주의는 통치권자의 자의적, 재량적 권력행사를 억제하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법치주의자'가 아니라 '법률주의자'인 셈이다. 오로지 검사의 검사에 의한 검사를 위한 '검찰 순혈주의자'일뿐이다. 지금 국민은 검사만 살판 난 나라를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