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대통령, '윤핵관' 늪에 빠졌다
최근의 국민의힘 내부 분란 사태는 표면적으로 지도부와 혁신위의 갈등으로 비치지만 실은 윤석열 대통령과 원조 윤핵관 간의 충돌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윤 대통령이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해결사로 내세워 윤핵관과 지도부를 쳐내려 하자 당사자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인 위원장이 "소신껏 거침없이 하라"는 윤 대통령 측의 메시지를 누설한 것은 이런 사실을 실토한 셈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안철수 후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된 당사자들은 인 위원장의 '윤심' 발언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며 누군가가 호가호위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아마도 이들이 지칭하는 누군가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일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달 현 정권 실세들이 총동원된 자리에서 대놓고 김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을 안다면 결국 현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이 윤 대통령임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실세 윤핵관들과 절연하려는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당 지도부와 당을 주물러온 윤핵관을 꼽았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1년 간의 저조한 국정 지지율과 선거 패배를 보면서 윤핵관의 무능과 전횡의 문제점을 새삼 깨달았을 수도 있다. 만약 윤 대통령이 이런 정도로 실상을 파악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윤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쇄신과 변화의 이미지다. 그러기엔 안팎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윤핵관과 당 지도부를 쳐내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당내 최대 기득권을 해체하면 여론의 호응과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을 솎아낸 자리에 자신의 충성스런 참모들을 앉힐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윤 대통령의 속내는 알 수 없으나 어느 경우든 윤핵관은 토사구팽의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총선 급한 尹, 윤핵관 '토사구팽' 의도
정치 생명 걸린 윤핵관도 필사적 저항
사실 지금의 윤핵관을 만든 장본인은 윤 대통령이다. 정치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자문하고 조언을 받으면서 그들이 권력화되는 것을 방관하고 부추겼다. 윤핵관들을 통해 국민의힘 의원들을 한줄로 세우고 충성을 강요한 게 윤 대통령 아닌가. 멀쩡한 당 대표를 '내부 총질'로 몰아세우고 윤핵관들에게 집단린치를 당하도록 내버려둔 것은 또 누군가.
당장 사지에 내몰린 윤핵관과 당 지도부가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핵심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이 수천 명의 지지자를 버스에 태우고 강당에 운집시킨 것은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실을 향해 "나를 치지 말라"는 명확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는 유튜브 채널에 교회 간증 장면까지 올리며 "권력자가 뭐라 해도 제 할 말은 하고 산다"고 했다. 정권의 실세인 그가 권력자라고 부를 사람이 윤 대통령 말고 따로 있을까.
김기현 당 대표도 그리 쉽게 주도권을 내줄 생각은 없다. 김 대표는 인 위원장의 '윤심' 발언에 "당무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대통령을 언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윤석열 카드'를 꺼낸 인 위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지만 '당무 개입' 운운한 것은 윤 대통령을 향한 발언으로도 읽힌다. 평소와는 다른 격한 반응에서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따지고보면 윤 대통령과 윤핵관은 가치보다는 서로의 이익과 실리를 우선한 특수관계다. 권력을 취하기 위해 잠시 이해를 같이한 일시적인 결사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정치 생명이 걸린 윤핵관과 김 대표에게윤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공허한 얘기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으로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 '윤핵관 해체'는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 찍어누르기에는 윤 대통령의 위세가 이전 같지 않다. 누구말대로 두둑한 현찰이라도 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양 쪽의 갈등은 보기에 따라서는 일종의 권력 투쟁 양상을 띠고 있다. 한 때는 입안의 혀처럼 놀던 윤핵관의 저항이 윤 대통령으로선 당혹스러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금 윤핵관이라는 늪에 깊이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