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 대통령 얼굴로 총선 치른다는데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10일 상징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용산에선 윤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 인사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한 축하 오찬이 열린 반면, 여의도에선 설화 논란을 빚은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개최됐다. 윤 대통령에게 환호를 보내는 행사와 집권여당의 심장부를 도려내는 절차가 동시에 열리는 모습은 한 편의 부조리극으로 보였다.
더 심각한 건 이런 기괴한 모습이 연출되지 않도록 사전 조율도 못한 여권의 상황이다. 말썽을 일으킨 최고위원들을 서둘러 내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절박한 처지에 몰린 것이다. 5∙18이 목전에 닥쳐 호남 민심을 끌어안고 대통령실 '공천 개입' 의혹을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컸을 것이다. 태 최고위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도 정권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요인을 일찌감치 제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따지고 보면 여당의 새 지도부를 출범 두 달 만에 나락으로 빠뜨린 사람은 바로 윤 대통령이다. 정치 초보인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여당을 장악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출발점이다. 이준석을 쫓아낸 것도, 전당대회 룰을 100% 당원으로 바꾼 것도, 마음에 안 드는 당대표 후보를 차례로 제거한 것도 그래서였다. 온갖 무리수와 편법으로 만들어진 '김기현 대표 체제'의 탈선은 애초 잉태된 것이었다.
여당은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윤 대통령의 갈증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모양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당을 새로운 인물로 물갈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한다. 여의도 주변에는 대통령실에서 내려올 인물과 검사 출신 명단이 진작부터 돌고 있다. 대통령실은 부인하지만 여당에선 아무도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공천을 좌지우지 할 게 아니라면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당을 흔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많은 의원들은 믿고 있다.
여당을 '용산 출장소'로 만든 윤 대통령 책임 커
총선 진두지휘 나섰지만 낮은 지지율로 어려움
윤 대통령이 자성하고 달라지지 않으면 안 돼
윤 대통령은 주변에 "총선은 어차피 내 얼굴로 치르는 것 아니냐"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총선 승패가 윤석열 정부의 실적과 비전에 달려 있는 만큼 본인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을 수 있다. 중간평가 성격인 총선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절대평가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이미 총선 진두지휘에 나선 모습이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전 정권과 야당에 거센 공세를 퍼부은 것은 일종의 선거 전략이다. 본인은 열심히 하려 했으나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유산과 거대야당의 횡포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발목잡는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읍소인 셈이다.
윤 대통령이 "국정 기조를 맞추지 못한 직원들은 솎아내라"고 한 것도 총선을 겨냥한 기강잡기 측면이 커 보인다. 새 정부 출범 후 잦은 정책 혼선 등으로 공직사회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국정 과제에 성과를 내도록 독려하는 한편으로 이념적 잣대로 관료들을 줄세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윤 대통령 얼굴로 총선을 이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권에서 걸핏하면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공격하지만 보수 언론들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당에서도 이런 대통령 지지율로 과연 총선을 치를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자신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몰아붙이지만 정작 먹장구름을 만드는 이는 윤 대통령인 것이다.
결국 문제의 시작과 끝은 모두 윤 대통령에게 있다. 여당을 대통령실의 '용산 출장소'로 격하시켜 자생력을 떨어뜨리고, 그런 여당의 무능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악순환에 빠진 모습이다. 이런 개미지옥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윤 대통령이 달라지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수많은 인사들이 입이 닳도록 제시한 바 있다. 그 것을 실천할지 말지는 오로지 윤 대통령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