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지지자들 부끄럽게 만드나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이 주고받은 인사청탁 문자는 여러모로 고약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발생한 몇 번의 인사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낙마한 초대 민정수석이나 갑질 장관 후보자는 개인 비위에 그쳤다. 이번 것은 정권 내부의 은밀한 속살이 여과없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내상이 깊을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이 대통령을 초창기부터 도왔던 이른바 '7인회' 멤버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만큼 처신을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그런데 자신들이 관여해서는 안 되는 민간단체 자리를 전리품처럼 주거니받거니했다. 대통령의 권력을 자신들 것처럼 호가호위한 셈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였다 해도 국가 중책을 맡았으면 서로 경계하고 긴장하는 자세를 갖는 게 마땅한 데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전의 버릇을 못 버리고 '형' '동생'한 건 최소한의 공적의식조차 결여됐음을 드러낸다.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을 학교 동아리나 친목모임 쯤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왔다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인사와는 무관한 직책으로 자리를 옮긴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이 거명된 건 또 뭐라고 할 것인가. 이걸 보고 김 실장이 더 이상 인사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 측근 그룹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게 자연스럽다. 김 실장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측근과 실세인사는 없고, 시스템으로 하고 있다"고 장담했던 강훈식 비서실장만 우습게 됐다.

'문진석-김남국' 문자 여러모로 부적절
대통령 권력을 자신들 것처럼 호가호위
집권세력 내부 기강 살피는 계기 돼야

국민들은 정권의 어떤 잘못된 행위보다 그 이후의 처리 과정을 더 유심히 본다. 과오를 얼마나 인정하고, 바로잡으려 했는지가 평가의 잣대가 된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의 대응은 화를 키우는 쪽이다. 대통령실은 당초 '엄중 경고' 입장을 내면서도 당사자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았다. 모두가 다 아는 이름을 굳이 감춘 건 그만큼 팔이 안으로 굽어서다. 대통령실이 지난 9월 대통령실 비서관의 인사청탁 사실이 드러났을 때 이름을 공개하며 면직처리했다며 보도자료까지 낸 것과는 너무 다른 대응이다.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자 대통령실은 뒤늦게 김 비서관 사직서를 수리했지만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은 셈이 됐다.  

민주당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문 원내운영수석에게 구두 경고를 했을 뿐,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도 않았다. 주식 차명거래 의혹이 불거진 이춘석 의원과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장경태 의원에 대해 즉각적인 윤리감찰단 조사 지시를 내린 것과 사뭇 다른 조치다. 민주당은 이틀만에 내놓은 문 원내운영수석 사과 표명으로 사태가 수습되길 바라지만 오산이다. '농단'과 '비리'의 싹은 뿌리를 도려내지 않으면 정권을 흔드는 대형 스캔들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비상계엄 사과 여부를 둘러싸고 뭇매를 맞던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로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갈라지고 찢어져 있다가 금세 한덩어리가 됐다. 청탁을 받고 자리를 내준 의혹을 받는 김건희와 뭐가 다르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내란과 탄핵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국민의힘에 구명줄을 내준 게 누군가.  

하필 인사청탁 문자 노출은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은 날 알려졌다. 민주시민의 함성이 다시 울려 퍼진 바로 그날이다. 음습한 인사청탁으로 대통령의 계엄 1년 특별성명도, 내란 청산 시민집회도 빛이 바랬다. 지지층 가운데는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수치를 느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새 정부 출범 반년밖에 되지 않은 지금은 안팎으로 엄중한 시기다. 내란 청산은 아직 갈 길이 멀고, 극우세력 등 반대진영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는 양상이다. 경제와 외교, 안보 등의 정세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투명하다. 상당수 국민은 이재명 정부에 절대적인 지지보다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매사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임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보고도 모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