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통일교 의혹', 양비론의 오류

통일교와 정치권의 금품 거래 의혹이 여권으로 번진 건 대형 악재임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의 일이라 해도 이재명 정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 관련된 게 사실이라면 타격이 없을 수 없다. 정권의 도덕성이 실추되고 내란 청산 동력 저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상태로 접어들었다.

여권을 더 곤혹스럽게 만든 건 특검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금품 제공 진술이 특검법 수사 대상이 아니라지만 넉 달 넘게 감춘 점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진작에 이런 사실을 공개해 직접 수사에 나섰거나 경찰에 넘겼으면 파장이 이토록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결정 과정에서 어떤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여권은 물론이고 특검의 신뢰도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통일교의 숨은 의도다. 윤영호 통일교 전 본부장이 민주당 의원인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거론한 배경은 "여야 모두에 접근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계산이다. 여권도 연루돼 있으니 "살살 하라"는 메시지다. 정치권에서 금품 수수와 관련된 범죄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보면 윤영호의 진술은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여야에 똑같이 줄대기를 한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상은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특검 수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통일교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인 윤석열 쪽에 필사적으로 선을 대려 했고, 성공했다는 거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건진법사 전성배는 김건희로 연결되는 완벽한 청탁 루트를 구축했다. 권력이 가장 막강한 신분인 대통령 당선자와 그 배우자를 동시에 '포획'한 셈이다.

통일교와 최고 권력과의 밀착이 그냥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통일교는 캄보디아 공적개발 원조 사업 증액 등을 청탁했고, 그 대가로 윤석열에겐 거액의 대선 자금이, 김건희에게는 명품 목걸이와 가방 등이 제공됐을 거라는 게 특검 판단이다. 김건희는 대선 직후 윤영호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했고, 선물을 받은 뒤에는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통일교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통일교 교인을 집단 가입 시켜 특정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반공주의' 통일교, 보수정치권 더 유착
대선 때 윤석열·김건희 청탁 루트 구축
민주당 접근, 개인 로비 차원 그친 듯

반면에 이제 막 수사가 시작된 단계지만 통일교가 민주당 인사들에게 접근한 강도는 매우 미약해 보인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에게 줄을 대려 한 흔적은 거의 나온 게 없다. 윤영호 통화 녹취록에는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Y(윤석열)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대선 전부터 윤석열을 찍어놓고 접근했음을 시사한다. 전재수 전 장관에 대한 금품 제공 의혹이 사실이라해도 '한일 해저터널' 지역구 의원을 향한 개인 비리일 가능성이 크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국정원장은 윤영호와 과거 한 차례 만난 게 전부라며 일체의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통일교는 1954년 창시이래 '반공주의'를 기치로 걸고 보수권력과 유착관계를 형성해왔다. 박정희 정권에서 반공이념을 매개로 공생 체제를 갖췄고, 이런 기형적 형태는 군사정권 내내 이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교세 확장과 이권 사업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반북·반공이라는 이념적 토대가 같았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극우와 반공에 터잡은 통일교는 애초 진보성향의 민주당 정권과는 친할래야 칠할 수가 없는 사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통일교의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접근은 제한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원이나 공직자 등에 대한 개별적 로비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을 윤영호가 국민의힘에게 했던 것과 같은 비중으로 부풀려 구명줄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이번 일을 '통일교 게이트'로 엮으려는 데는 국민들에게 오십보백보, 피장파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정치와 종교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지 못했다. 그 후폭풍이 지금 한국에서 가장 기이한 형태로 펼쳐지고 있는 '종교의 정치화'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는 극우화의 중심에는 통일교, 신천지 등 사이비 종교와 보수 기독교 세력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종교의 정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단죄해야 할 명분이 커졌다. 더 이상 종교가 나라를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