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속으로 웃는 이진숙

5·18을 폄훼한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 국회 통과는 사실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결의안이라는 말 그대로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으니 의원직을 박탈하자고 동료 의원들에게 촉구하는 것일뿐이다. 내심 이진숙 주장에 동조하며 징계에 눈감은 국민의힘을 헌법 부정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진숙을 제명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28개월째 공전중인 국회 윤리위원회부터 가동시켜야 한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6대 6대 여야 동수로 윤리위 구성에 합의했으나 강성 지지층 반발에 무산됐다. 윤리위가 문을 열려면 위원 구성 비율부터 풀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설혹 여야 합의가 이뤄져 윤리위가 가동된다해도 갈 길이 멀다. 그간 국회에 쌓인 의원 징계안은 무려 55건에 달한다. 이중 25권이 범여권, 30건이 범야권을 겨냥하고 있다. 여권에선 '딸 축의금 논란' 최민희,'갑질 논란' 강선우,'주식차명거래 논란' 이춘석 의원 등이 있고, 야권에서는 '백골단 기자회견' 김민전,'젓가락 논란' 이준석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사안 하나하나가 파괴력이 커 합의에 이르기 쉽지 않을 뿐더러 접수 순서대로 논의를 하면 이진숙 건은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다.

가까스로 윤리위에서 제명 징계안이 통과된다고 치자. 국회의원 제명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범여권 의원들이 모두 찬성표를 던진다 해도 10여명이 부족하다. 26일 국회 결의안 통과 때 표결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은 4명이었고, 2명이 찬성했다. 결의안도 그 정도인데, 실제 의원직 제명에 동참할 의원은 더 적다고 봐야 한다. 이런 계산을 하다보면 이진숙 의원직 제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진숙은 정확히 '급소'를 알고 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의원직을 박탈할 수 없다는 것을 다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이진숙이 개최한 5·18 토론회 포스터에는 '학술적 성찰'이란 글씨가 빨간색으로 돋보이게 표시돼 있다. 행사에 앞서 이진숙 측이 내놓은 보도자료는 '광주정신'의 역사관을 분석하고, 일각에서 제기돼 온 '북한군 투입설' 등 확실한 근거가 없는 주장은 오히려 5·18 논의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입장을 밝힐 것라고 예고했다.

국회 결의안 통과에도 이진숙 제명까지는 산넘어 산
5·18토론회 개최로 정치적 몸집 높이려는 목적 달성
민주당, 차분하고 끈질기게 역사적 책임 엄중히 물어야 

그런데 정작 행사장에선 "열흘 간의 소요사태" "5·18은 1987체제 오염과 타락의 주범" "광주를 고립시켜야 한다"는 등의 망언이 터져 나왔다. 5·18을 격하하려는 세력을 끌어들여 국회를 역사 왜곡의 무대로 만들기로 이진숙이 미리 작정한 것이다. 사전에 별 일 아닌 것처럼 꾸며 행사 개최에 지장이 없도록 해놓고는 대형폭탄을 터뜨린 셈이다. 국회를 기만하고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진숙은 이전부터 유독 5·18에 집착해왔다. '5·18이 폭도들의 선전선동에 따라 발생했다'는 혐오 댓글에 '좋아요' 를 누르는가 하면, 5·18 조롱 논란으로 징계를 받은 배재고에 화환을 보내며 공개지지에 나서기도 했다. 국회 입성 두 달만에 벌인 이번 5·18 토론회는 이진숙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진숙은 내심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진숙은 이미 '보수의 여전사'로 우뚝 섰다. 5·18 토론회 개최후 참석한 올림픽 공원 집회에서는 "대통령 이진숙"이라는 연호가 쏟아졌다. 이진숙 제명 반대 서명에는 13만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5·18을 도구 삼아 정치적 체급을 한껏 키우려는 속셈이 착착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이진숙의 술수를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상징성에 그치는 결의안이 아니라 이진숙의 폭주를 멈출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민주당은 5·18을 왜곡·폄훼한 국회의원의 직무를 최대 1년간 정지시킬 수 있는 국회법 개정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제명은 어렵더라도 의원직을 일정기간 정지시킬 수 있다면 어느정도 억제 효과는 있을 것이다.  

국회가 보여줘야 할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이진숙에게 책임을 엄정하게 묻는 것이다. 이진숙을 '여자 히틀러 '여자 전두환'이라고 부른다고 되는 게 아니라 끝까지 역사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어야 한다. 말이 아닌 행동과 절차, 제도로 차분하고도 끈질기게 접근해야 한다. 극우 보수세력을 등에 업은 이진숙의 가슴에 더 이상 '훈장'이 달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