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세훈의 '두 얼굴'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금의 유력 대선 주자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른바 '오세훈법'이 등장한다. 초선의원이었던 그는 대선 자금을 전달한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을 계기로 총선 불출마를 내걸며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을 관철시켰다. '깨끗한 정치인'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시킨 그는 얼마 후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5선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데는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유권자 뇌리에 남아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오 시장이 자신이 주도한 정치자금법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아이러니다. 당시 오세훈법의 뼈대는 정치자금 기부 금지와 기부 실명제 등이다. 불투명한 돈을 일절 받지 말자는 취지다. 그런데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자산으로 삼고 체급을 키워온 정치인이 정작 자신의 선거에서는 불법으로 정치자금을 받았으니 기막힌 반전이다. 위법 여부는 둘째치고라도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중적 행태를 보인 것에 실망을 넘어 배신감마저 든다.
그새 오 시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첫 서울시장 당선 후 승승장구하던 오 시장은 무상급식 전면 추진에 반대해 시장직을 걸고 강행한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중도 사퇴했다. 이후 10년 동안 혹독한 야인 생활을 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는다. 정치적 재기가 급했던 오 시장은 당내 경쟁 후보인 나경원에게 여론조사에서 밀리자 선뜻 '정치브로커' 명태균의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10년의 야인' 탈출하려 명태균 손 잡은 게 화근
유권자 눈 속이려 거짓말 쏟아낸 책임 못 면해
오 시장은 명씨와 관계를 줄곧 부인해왔다. 여론조사를 부탁한 적도, 결과를 받아본 적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오 시장을 제외한 모든 사건 관련자들의 증언과 물증은 그를 향하고 있다. 명씨는 물론 오 시장을 명씨에게 소개시켜 준 김영선 전 의원, 후원자로부터 돈을 입금받은 강혜경 미래연구소 직원의 진술이 정확히 일치한다. 법적 다툼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이 하나같이 오 시장을 지목하고 있는 건 비용 대납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도대체 오 시장의 후원자가 일면식도 없는 강씨에게 수천만원을 보낸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나.
재판부의 오 시장 유죄 판단 사유중 하나는 "죄질이 안 좋다"는 것이다. 오랜 정치활동으로 정치자금법의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공직선거법상 금지된 여론조사를 의뢰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보다 더 고약한 것은 자신의 범죄를 덮으려고 돈을 대신 건넨 것이다.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부부는 명씨에게 묵시적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하면서도 뚜렷한 대가는 드러내지 않았다. 적어도 이 사건에서만큼은 죄질이 윤석열, 김건희보다 나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 시장은 처음부터 전략을 잘못 세웠다. 명씨의 폭로가 시작되자 오 시장은 명씨를 '사기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명씨를 '정치 장사꾼'에 불과한 존재로 깎아내리려는 의도였다. 메시지에 대응하기보다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낡은 방식을 택했다. 이런 태도가 되레 명씨를 자극해 결과적으로 오 시장의 손해로 돌아왔다. 명씨는 "내가 안고 가려 했는데 안 되겠다"며 "오세훈을 꼭 잡겠다"고 거듭 공언했다. 재판부도 명씨의 진술이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명씨의 손을 들어줬다.
오 시장은 유죄 선고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전날까지 오 시장은 국민의힘 중진들과 연쇄회동을 하는 등 광폭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가를 선고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당내 세력 구축에만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시민들의 투표로 당선된 자신을 법원이 어쩌겠느냐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오 시장의 이런 안이한 판단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유권자의 눈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하다 더 큰 구렁텅이에 빠졌다. '두 얼굴'을 한 오 시장은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