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로남불'이 가장 무섭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악몽'은 수십 차례의 정책 실패가 원인이지만, 정책 당국자들의 내로남불 태도도 크게 작용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이란 사람은 자신은 강남에 거주하면서 "모든 사람이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해 서민들 속을 뒤집어놨고, 또다른 정책실장은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는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에 전세 보증금을 대폭 올린 사실이 들통나 해임됐다. 보유한 강남 집 두 채 중 한 채를 처분하라는 요구를 받자 아예 청와대를 떠나버린 민정수석도 있었다. 치솟는 집값을 잡으랬더니 되레 '강남 불패' 신화 공고화에 기여했으니, '투기와의 전쟁'에서 패배는 예정됐던 셈이다.

'10·15 대책' 발표 후 일부 정책 당국자들의 발언은 그때의 분위기를 솔솔 풍긴다. "지금 사려하니까 스트레스를받는데 시장이 안정되고 소득이 쌓이면 기회는 돌아오게 돼있다"는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의 말이 그리 틀린 건 아니다. 한데, 그는 평론가나 유튜버가 아니라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 당국자다. 경기도 분당에 수십 억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장만하기도 했다. 갭투자 의혹의 당사자가 갭투자를 금지하는 정책을 내놓은 뒤 "나는 먼저 샀으니 여러분은 나중에 사세요"라고 하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이나 해봤는지 의문이다.

"대출을 더 일으켜 주택 구매를 뒷받침해주는 정책이 주거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을 자극한다"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발언도 다를 바 없다. 원론적으론 맞는 말이나 그 역시 강남의 아파트를 전세 끼고 대출까지 받아 산 당사자다. 그 아파트는 최근 재건축이 끝나 이 위원장은 수십 억원대의 돈방석에 올랐다. 재건축을 기대하며 낡은 아파트를 전세와 대출로 마련한 전형적인 갭투자가 아니라 할 수 있나.

최근의 집값 불안이 오롯이 현 정부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전 정부에서 주택 공급이 현저히 떨어진 유탄을 이재명 정부가 맞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새 정부 들어 서울과 수도권에서 아파트 값이 급격히 오르도록 방치한 책임이 이 차관과 이 위원장 등 당국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런 책임을 인식한다면 말이라도 신중히 가려해야 마땅하다. 자신들은 갭투자로 돈을 벌고도 국민에게는 무리한 투자를 하지 말라고 나선다면 진정성과 신뢰성은 애초 기대조차 무망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 악몽 떠올리게 한 국토부 차관 발언
언론자유 앞장선 최민희 언론 위협 발언도 경솔
정권 초의 긴장감 풀린 집권세력 각자 성찰 필요

국민 다수의 심기를 살피지 않는 모습은 비단 부동산 정책 당국자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민희 국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최근의 행동은 실망스러운 구석이 적지 않다. 그는 오랜 기간 언론자유 운동에 헌신해온 사람이다. 보수정권의 언론 장악에도 기죽지 않고 맞서 싸웠다. 그런 그가 문화방송(MBC) 업무보고에서 자신이 등장한 보도를 문제 삼으면서 보도본부장을 회의장에서 퇴장시킨 사실은 비상식적이다 못해 기이하다. 언론자유에 누구보다 앞장 선 사람이 대놓고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정반대의 행동을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딸의 결혼식 논란은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본인이 신경을 썼든 안 썼든 국감 도중에 자녀 결혼식을, 그것도 국회에서 한 것은 부적절했다. 피감기관이 보낸 화환이 줄지어 있었던 것이 이를 보여준다. 시간·장소를 딸이 결정했기 때문에 부모로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국민에게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최 위원장이 평소 정의와 공정을 강조해온 것과도 맞지 않는다는 걸 왜 깨닫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내로남불은 보수, 진보 등 이념과는 무관하다. 기득권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늘 내로남불에 포획될 조건을 갖고 있다. 법원이 1050원짜리 초코파이를 먹은 이는 유죄 판결하고, 170만원어치 '술접대'를 받은 판사는 면죄부를 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유독 진보진영에 내로남불의 덫이 씌워지는 건 그만큼 국민의 기대와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정치적 공세로 치부할 게 아니라 자신들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게 나은 태도다.

없던 권력이 생기면 그 권력이 주는 위험성을 쉽게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도덕성과 우월성에 사로잡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잘 수긍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지난 진보정권의 정권 재창출 실패로 나타났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넉 달이 지난 지금, 초기의 긴장감과 불안함이 사라진 기색이 완연하다. 집권세력 각자에게 통렬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