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주당, 장동혁을 잊어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제1야당을 이끌 자질과 역량이 있는지 의문이 많지만 생존 본능이 탁월하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표 취임 후부터 허다한 퇴진 압력에도 끝끝내 버텨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고비마다 단식과 필리버스터 연설, 병원 입원, 미국 방문,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신공(神功) 하나만큼은 여타 정치인을 압도한다.
국힘 일부 의원들이 이번에는 예고된 대규모 징계를 불쏘시개 삼아 다시 퇴진에 불을 당기지만 어림도 없다. 6·3 지방선거가 한달이 지났는데 이제와서 물러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얼마 있으면 정기국회가 시작되고 국정감사가 열린다. 야당으로선 일년중 가장 큰 판이 열리는 마당에 당대표 퇴진 주장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이제 칼자루를 잡은 건 장 대표다. 임기인 내년 8월까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시기를 골라 사퇴한 뒤 공천권을 가진 차기 전당대회를 노릴 개연성이 짙다.
더불어민주당은 장 대표의 건재가 반가울 것이다. 국힘의 내분이 지리하게 이어지면서 온전한 야당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장동혁은 말이 대표지 이미 권위를 상실한지 오래다. 무슨 말을 해도 영이 서지 않고 되레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당을 향한 국힘의 공세는 허공에 부서지고, 여론의 반응도 미적지근하다. '장동혁 체제'가 지속되는 한 민주당은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재명 정부 첫 정기국회도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도 할 법하다.
헌데, 이런 상황이 민주당에 좋기만 할까. 지방선거만 해도 그렇다. 민주당은 선거 운동 내내 장 대표를 믿고 압승을 자신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따논 당상이라 여겨 캠페인을 느슨하게 했고,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안이하게 대응했다. 격전지에 출마한 정치 신인들도 덩달아 '1등 전략'을 펴며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었다. 당도 후보도 모두 "장동혁이 있는 한 절대 선거에 지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만약 장 대표가 사퇴해 비대위 체제가 꾸려졌거나, 다른 사람이 당 대표였어도 그랬을까 싶다.
안이했던 지방선거, 선넘은 당권 경쟁도 그탓
장동혁 아닌, 오세훈과 한동훈 보고 경쟁해야
소모적인 공방과 상대 후보를 겨냥한 난타전이 펼쳐지고 있는 전당대회 모습도 장동혁 체제와 무관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국힘에 존재감 있는 지도부가 들어섰다면 지금처럼 한가한 '적통 논쟁'에 "그때 너는 뭐했느냐"는 식의 흠집내기에 골몰하지는 않았을 거다. 야당의 공격에 당정이 어떻게 단합해 맞설 건지, 집권여당으로서 민주당의 정책과 비전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두고 잘하기 경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착각하고 있다. 국힘 내부의 분열상은 겉으로는 격렬해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장 대표는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다수를 관통하는 듯 보인다. 어느 시점이 되면 활화산처럼 폭발해 주류가 교체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보수는 의외로 변신이 빠르다. 민주당보다 계파 의식이 옅고, 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중심으로 헤쳐모이는 게 일반적 속성이다. 박근혜를 구속시킨 윤석열을 숙적으로 취급하다 느닷없이 대선 후보로 떠받든 게 국민의힘이었다.
보수 진영은 머지않아 다가올 장밋빛 미래에 가슴이 부풀어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오세훈과 한동훈이라는 든든한 대선 주자를 얻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장동혁은 물러날 사람이고, 오·한 두 사람이 보수의 주력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아가 이준석까지 포함해 '보수 연대'를 구축하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잃어버린 정권을 탈환할 수 있다는 기대가 팽배하다. 한국 정치 동향에 관심이 많은 일본 주요 언론이 오세훈과 한동훈을 인터뷰한 이유가 뭐겠는가. 보수 정당과 세력이 다시 팽창할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민주당은 장동혁을 볼 게 아니라 그 이후를 내다봐야 한다. 국힘 내부에서 꿈틀대는 변화와 재건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대처해야 한다. 윤석열 내란 관련 사건 첫 대법원 선고로 이제 그에 대한 관심도 현격히 줄었다. 윤석열도 장동혁도 더 이상 민주당의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그들과의 상대평가가 끝나고 오롯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능력과 성과로 평가받는 절대평가의 시간이 도래했다. 민주당은 장동혁을 빨리 잊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