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희대 회동설', 끝나지 않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여권이 제기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반이재명 공모설'을 부인했지만 의문은 남는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선 후보 유죄 취지 파기환송과 한 전 총리 출마 사이에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대법원이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재명을 사실상 낙마시키려 한 결정이 없었어도 한 전 총리가 대선에 출마하려했겠느냐는 게 의구심의 출발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의 파기 환송 선고가 나온 것은 지난 5월 1일이다. 대선 출마를 위한 한 전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사퇴 선언은 같은 날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대법원 선고가 나온 지 2시간 후였다. 만약 대법원에서 이재명의 무죄를 확정했어도 한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위해 권한대행을 내려놓는 선택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당시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이재명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오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보수·진보 정권을 넘나들며 고위 관료 자리를 유지해온 한 전 총리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널 정도로 신중함이 몸에 밴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믿는 구석도 없이 무모하게 대선판에 뛰어들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혹여 한 전 총리는 시중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판결이 나올 거라고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조희대 회동설'에 등장하는 면면도 허무맹랑한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특히 지금은 많이 알려진 김충식이란 인물이 그런 의문을 키운다. 처음 의혹이 제기된 지난 5월만 해도 그의 존재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누군가 소설을 쓰려했다면 굳이 격도 안 맞는 그런 사람을 끼어 넣었을 이유가 있을까 싶다. 오히려 회동설의 신빙성을 떨어뜨릴 일이 아닌가.
대법원 이재명 선고와 한덕수 출마 시점 석연찮아
민주당, 의혹 규명할 보다 구체적인 단서 제시를
특검 수사가 시작된 후 상황은 달라졌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된 김충식의 수첩에는 정치, 종교, 방산사업, 금융내역까지 다양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특정 인물과 금전거래로 의심되는 메모, 해외무기 수출과 관련된 메모, 종교 단체와 정치인을 연결하는 메모 등이 발견됐다. 단순히 김건희 집안의 '집사' 정도가 아니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회동설의 한 당사자가 될 만한 비중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회동설이 야당 주장대로 '음모론'이라고 쳐도, 모든 음모론에는 나름대로 배경과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경우는 대법원 판결과 한덕수 대선 출마라는 두 개의 황당한 사건이 결합돼 증폭됐다.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지 단 9일만에 유죄 판단이 내려진 상황은 상식의 영역에서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뒤 "대선의 ㄷ도 꺼내지 말라"고 하고 "미국과 관세협상이 마지막 소명"이라고 했다가 돌변한 한 전 총리의 기이한 행보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근원적인 배경과 의문이 남아있기에 '조희대-한덕수' 회동설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현직 대법원장의 처신과 관련된 사안이기에 진상을 밝히지 않고 넘어가기는 어렵게 됐다. 자신의 명예가 걸린 조 대법원장 입장에서도 그렇고 의혹을 제기한 집권여당으로서도 이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덮을 일은 아니다. 특검이 수사에 나서 진실을 가려주면 좋겠지만 적극 나서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다. 조 대법원장이 자신의 무고를 밝혀달라며 수사를 의뢰하면 좋겠지만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이 사안은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의혹을 제기했고, 조 대법원장이 회동설을 강하게 부인한 상태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의 주장을 반박할 보다 구체적인 단서를 내놓는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의혹을 뒷받침할 복수의 제보를 확보했고, 법사위에서 계속 의혹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혹을 처음 제기한 서영교 의원도 보수정권 민정라인의 고위직 인사로부터 제보를 받았다며 "아주 신뢰할만한 내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의혹의 근거를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기서 물러나면 야당에 정치적 공세의 빌미만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