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권 잃으면 검찰 반드시 살아난다
여권이 검찰에 일점일획의 수사권도 주지 않는 것은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켜켜이 쌓여서다. 굳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검찰은 진보정권에 유독 가혹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부터 검찰의 도전을 받았고, 아직도 사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 검찰'이 총동원돼 온갖 혐의를 뒤집어씌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보완수사권 폐지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이런 트라우마가 투영된 결과다. 검찰에 일말의 여지라도 남겨두면 언젠가 반드시 좀비처럼 되살아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윤석열 정부 시절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등(等)'자 하나로 검찰 수사권을 대폭 확대한 것을 보면 이를 단지 기우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제 검찰 조직과 수사권을 관에 넣고 대못을 박았으니 모든 게 끝난 걸까. 검찰청을 공소청과 중수청으로 분리하고, 법을 고쳐 검찰 수사권을 없앴으니 검찰개혁은 완수된 것일까. 이는 착각에 불과하다. 당장 눈앞에 검찰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닌 것이다. 지금의 집권세력과 지지층이 잠시만 방심해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여지가 다분하다.
1차 고비는 그리 머지 않은 시기에 닥친다. 내후년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고 보수 야권이 우위를 점하는 상황이다. 검찰청 해체와 보완수사권 폐지에 쌍심지를 돋우고 있는 보수 정치권이 최우선 과제로 '검찰원복'을 추진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명확하다. 수사·기소 분리를 골간으로 한 검찰개혁안은 헌법을 개정한 게 아니다. 법안 몇 개를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 이뤄낸 것이다. 관련 법을 고치면 얼마든지 관두껑을 열어젖힐 수 있다.
폐지된 검찰 수사권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에서 삭제된 196조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된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는 조항을 넣으면 다시 살아난다. 검찰의 수족을 잘라놓은 공수청, 중수청도 법을 바꿔 다시 완전체로 되돌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래도 행정부는 아직 이재명 정부가 장악하고 있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를 막을 수는 있다.
총선, 대선 패하면 검찰 화려하게 부활
'디모클레스의 칼' 밑에 선 집권 세력
문제는 대선이다. 3년 반 후 치러지는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 그때부터 '지옥문'이 열릴지 모른다. 보수 대통령과 보수화된 국회가 한통속이 돼 검찰을 옭아맸던 모든 제도와 법을 풀어줄 가능성이 크다. 기사회생한 검찰은 이전의 몸을 되찾는 것을 넘어 더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칼날이 어디를 향할지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인사들이 타깃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보수정권과 검찰은 항상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 보수정부는 검찰의 권력과 이권을 챙겨주며 검찰권을 정치수단으로 이용했고, 검찰은 이에 충실히 보답했다. 검찰이 70년 넘게 누려왔던 권력을 뺏겼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결코 자숙과 참회의 표출은 아닐 것이다.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언제든 자신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잠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국정에서 성과를 내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현실을 보면 먹구름이 가득하다. 이 대통령은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재임중에 해결하려는 생각이 강한 것 같고, 민주당은 계파 싸움에 여당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사실 보완수사권이냐, 보완수사요구권이냐는 논란은 사태의 본질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키운 건 당의 헤게모니를 누가 차지할 것이냐는 집권세력 내부의 갈등이었다. 이 대통령은 강성 당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민주당도 당권 싸움의 자장에 휩쓸렸다. 이로인해 오랜 숙원인 검찰개혁 완성이 진보정부의 성과로 평가되기는커녕 정권의 성패를 좌우하는 변수가 돼버렸다.
만약 정치 권력이 보수 세력에 넘어간다 해도 검찰의 귀환을 국민이 완강히 반대한다면 무리하게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 조건은 지금의 검찰개혁이 순탄하게 작동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중수청과 경찰의 수사력이 국민이 안심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돼야 하고, 수사권의 남용과 부당한 행사가 없어야 한다. 검찰이 없어도 국가 수사총량이 아무 문제 없이 유지돼야 하는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대 그리스의 우화인 '디모클레스의 칼'은 권력의 자리에는 늘 불안과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으로 자주 인용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금 그 칼 밑에 서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