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진숙의 착각

경찰에 체포됐다 법원 석방 결정으로 풀려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한껏 고무된 듯하다. 왜 안 그렇겠나. 수갑 찬 손을 번쩍 드는 장면을 연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탄압받는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진숙'이라는 이름 석 자는 긴 추석 연휴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렸다. 각본을 쓴데도 이렇게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발된 지 5개월 동안 손놓고 있다 하필 경찰이 이 시점에 체포영장을 집행한다고 난리쳤는지는 논외로 치자. 정작 궁금한 건 이 전 위원장의 석연치 않은 태도다. 무려 6차례나 경찰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윤석열조차 3차례 출석에 불응한 대가로 공수처와 특검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나. 이 전 위원장은 마냥 경찰이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을 게다.

체포와 석방, 그리고 이후에 이 전 위원장이 던진 말은 의구심을 돋운다. 그의 체포 후 일성은 "이재명이 시켰냐, 정청래가 시켰느냐"였다. 대통령이나 여당이 수사기관에 누구를 어쩌라 말라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거론한 건 자신의 위법 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법 집행을 정치적 프레임으로 엮은 것이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를 자신과 동격으로 놓는 말 재간도 놀랍다.

이 전 위원장은 석방 직후에는 "대통령의 비위를 거스르면 당신들도 구치소, 유치장에 갈 수 있다"고 했고, 다음날 페이스북에는 "국민 여러분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글을 띄웠다.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을 투사로 규정하고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노회한 정치인의 언어다. 마치 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잘 짜인 연설문을 보는 듯하다.

그가 뻔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행보임에 틀림없다. 진작부터 정치권에는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에 출마한 거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는 2022년 대구시장 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나오려다 공천에서 탈락했고, 앞서 21대 총선에도 대구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어떻게든 화려하게 입성해보겠다는 야심에 불타있다. 그런 마당에 경찰이 자진해서 판을 깔아줬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터다.

경찰 헛발질에 고무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
'이재명, 정청래' 언급, 선거 출마 의도 역력
언론탄압과 왜곡된 이념의 '정치 무자격자' 

하지만 '보수 여전사' 이미지를 각인시켜 당선되겠다는 계산이 적중할 지는 의문이다. 이 전 위원장이 체포는 면했어도 공직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 기소는 불가피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줄곧 강조해온 '6-3-3' 원칙에 따르면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1,2심까지는 결정된다. 국가공무원법은 정치운동죄에 대해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자격정지를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은 이 전 위원장의 유튜브 출연에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판단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전에 출마 자격 제한이 기정사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수 개월 내에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전 위원장은 대전MBC 사장 재임시절 법인카드 수천 만원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상태다. 조만간 검찰이 기소하면 업무상 횡령과 배임으로 유죄를 피할 수 없다. 공직자가 되기에는 부적절한 혐의를 덕지덕지 붙인 채로 선거에 출마하고 공천을 받으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이 전 위원장은 애초 방통위원장을 맡을 때부터 정치 무자격자나 다름없었다. 과거 MBC 주요 간부로 재직하며 노조 탄압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았고, 5·18과 '이태원 참사' 폄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방통위원장 취임 후에도 방송장악 논란의 중심에 항상 이진숙이 있었다. 법원이 '2인 체제'의 위법성을 확인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공영방송을 옥죄였다. 그럼에도 이 전 위원장은 안하무인의 행태로 자리를 지키려다 결국 파국을 맞았다.

이 전 위원장의 얕은 꾀는 상당수 국민이 이미 간파했다.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고 일거수 일투족을 정치화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속내를 알아챘다. 그런 어설픈 셈법이 통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국민을 너무나 우습게 여긴 것이다. 이진숙은 자신이 여러 혐의를 받고 있는 수사대상자일뿐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닫는 게 그나마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