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통령만 보인다

'강선우 사태'에서 짚어볼 대목이 많지만 가장 눈 여겨 본 것은 대통령 참모들과 여당의 태도다. 대통령실 인사청문회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은 정무수석은 인사 논란이 불거지자 "전적으로 대통령이 결정할 몫"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는 "참모는 입장이 없다"고 빠져나갔고, 의견 개진은 "말이 아니라 문서로 한다"고도 했다. 인사청문회 팀장이자 대통령을 보좌하는 핵심 참모가 입장이 없으면 누가 시중의 여론을 전하고, 쓴소리를 하나.    

더불어민주당은 한 술 더 떴다. 당지도부는 처음부터 "대통령실이 판단할 일"이라며 팔짱을 끼었다. 민심은 악화하고 지지층 내부 균열은 커지는데 민심의 촉수 역할을 해야할 집권여당은 '대통령 마음'을 읽느라 전전긍긍했다. 강 후보자가 민주당 소속이고, 자당의 보좌관 갑질 문제가 터졌는데 강 건너 불구경이 말이 되나. 오히려 "국회의원과 보좌진 관계는 직장과는 다르다"는 설화로 여론에 불을 질렀다.  

최근 낙마한 인사들의 공통점은 거의가 이 대통령이 점찍었던 사람들이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오광수 민정수석이나 보수인사로부터 직접 추천을 받은 강준욱 비서관이 그랬고, 강 후보자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이 픽한 인물들이니 인사검증이 제대로 가동되기 어려웠을 테고, 참모들과 여당에서도 이 대통령만 쳐다보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 불똥은 고스란히 이 대통령에게 떨어졌다. 대통령 지지율이 처음으로 꺾였고, 소통과 경청의 이미지도 타격을 입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인사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정 전반에 걸쳐 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 두드러지면서 어두운 구석도 보인다. 벌써부터 관가 주변에선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만 지켜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대통령의 그립감이 커지면 아랫사람들이 위축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가장 센 시기인데다, 아직 내각 진용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시장·도지사로 재직하며 경험한 행정가로서의 디테일이 강하다. 장마철을 앞두고 빗물받이 담배꽁초 제거 방법을 알려주고, 민생지원금 카드 색깔이 잘못됐다고 깨알 지시를 내릴 정도로 꼼꼼하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30시간이면 좋겠다"며 의욕에 불타고 디테일도 강한 리더 앞에서 자기가 옳다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급자들은 드물다. 정작 할 말은 못하고 대통령의 지시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

성남시장 때부터 잦은 정치적 공격을 받아온 이 대통령은 당장 유권자들에게 효능감을 줄 수 있는 성과를 중요시해왔다. 대통령이 돼서도 참모들에게 "왜 이렇게 속도가 더디냐"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늦은 밤까지 텔레그램을 통해 직접 참모들에게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전달하거나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홀로 모든 국정 현안을 주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부작용도 있다. 향후 국정 위기가 왔을 때 모든 책임이 대통령을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실용주의'는 현장에 밀착해 꼬인 현안을 풀어내는 데 상당한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당장의 성과에 매몰되다 보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에 닥친 과제는 보다 크고 어려운 것들이다. 미국과 관세협상은 미중관계 등 외교안보의 궁극적 갈길을 묻고 있고, 민생 문제는 소득·자산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와 연결돼 있다. 국가 성장동력과 균형발전, 복지국가 등 하나같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지을 과제들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공직사회가 안정되면 선장이 맨날 항해사한테 이래라 저래라 지시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만기친람하는 형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다. 이제 내각 구성과 국정과제를 정하는 국정기획위원회 활동도 마무리 단계니 이재명 정부가 만들려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고민해보기 바란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대한민국'의 비전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 설정을 분명히 한 다음 직원들에게 믿고 맡기는 사람이 진짜 유능한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