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청래의 '퇴로'

이재명 대통령이 일시적 봉합을 선택했다. 18일 유럽 순방 귀국 행사에서 90도 인사로 맞이한 정청래 여당 대표와 손을 맞잡았다. 속절없이 추락하는 지지율과 여권 내 갈등 증폭에 대한 우려에서일 것이다. 속이야 어떻든 외형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음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컸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다. 정 대표는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는 발언을 주워 담으려 연일 이 대통령에 대한 칭송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일부 언론이 친청(친정청래)과 친석(친김민석)으로 갈라치기 한다"며 애써 갈등의 구도를 바꾸려고 한다. 두달 앞으로 다가온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셈이다.

정 대표와 당권파 측에선 6·3 지방선거를 민주당 '패배'로 규정하는 데 억울해 한다. 12대 4라는 결과와 불모지 강원에서의 승리를 강조하고, 선거 기간중 정 대표의 '헌신'과 열정을 왜 인정해주지 않느냐고 하소연이다. 대놓고 얘기하진 않아도 이 대통령 책임론을 들먹이기도 한다. 고비마다 보수 진영을 자극해 결집을 초래했으니 선거 실패의 책임을 나눠져야 된다는 논리다.

선거 결과 책임을 무 자르듯 할 수 없다는 건 정치권에선 상식에 가깝다. 선거에서 이겼을 때는 서로 공적을 자랑하느라 '선거 백서'를 내기가 쉽지만 패배했을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패배의 책임을 따지는 것 자체가 권력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는 탓이다. 지금의 여권 상황이 그렇다. 민주당 지지층이 불만스러워 하는 결과에 대해 여당 대표가 책임을 희석하려는 데서 논란이 커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점이다. 정 대표가 아무리 '이재명 정부 성공'을 외쳐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이들이 많아졌다. 8월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가 선출되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됐다. 총선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자기 권력 확대에 줄달음칠 거라는 예상을 누구나 한다. 이 대통령과 일정 부분 대립각을 세우며 독자적 정치 공간을 넓히려 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8월 전당대회 출마 의사 굳힌 정청래 대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투쟁 불 보듯
이 대통령, 정 대표 출구 찾아줄지가 관건

지금이 정권 후반기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불과 이재명 정부 2년차다. 민생·경제 입법과 국정과제 추진에 한창 속도를 내야 할 시기다. 정부와 여당이 손발이 맞지 않으면 국정은 표류하고 혼란은 일상화되기 마련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내에서 독자 노선을 구축해 사실상 허수아비 정부가 됐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로서는 당정 불협화음이 민생 성과 부진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총선 패배, 정권 재창출 실패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이 대통령이 쥐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 대표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이 대통령뿐이다. 이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정 대표에게 신호를 줬다. 지방선거 실패 책임이 민주당에 있다고 했고, 여당은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정 대표를 설득해 주저앉히든지, 그냥 출마를 지켜보든지 하는 것이다. 날로 깊어지는 계파 갈등과 지지층의 이탈 움직임을 감안하면 후자는 선택하기 어려운 안이다.

정 대표가 연임에 도전하면 국민의 눈에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투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 모두에게 너무나 큰 부담이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이 대통령의 정치력이다. 대통령의 당무개입은 허용되지 않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도 여당을 나몰라라 방치한 경우는 없었다. 다만 법적 문제로 비화되지 않도록 물밑에서 은밀하게 이뤄졌을뿐이다.

관건은 이 대통령이 정 대표에게 퇴로를 열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선거 실패의 책임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위해 명예롭게 물러난다는 명분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시간은 이 대통령 편이 아니다. 여론은 악화 일로고,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이 대통령이 마주한 가장 큰 고비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