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 대통령에게 부동산은 시작일뿐
집권 2년차를 맞은 이재명 대통령이 신발끈을 단단히 맸다. 연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무회의에선 여러차례 "국회가 너무 느려서 답답하다"고 했다. 야당 대표의 막판 번복으로 무산됐지만 여야 대표 회동을 하려던 것도 입법 속도 당부 차원일 것이다. "정부 출범후 7개월이 지났지만 제 기준으로 보면 정말 많이 부족하다"는 이 대통령 말에는 속마음이 묻어있다.
이 대통령의 첫 포문은 부동산 이슈였다. 여권 내서도 이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에 이토록 전력을 기울이리라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선거를 앞둔 부동산 논쟁은 이전 같으면 금기였다. 정치권에선 지방선거용 '승부수'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전 국민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정면돌파할 이유가 있을까. 선거 판세가 불리하지도 않고, 지지율에 목말라할 상황도 아니다.
이 대통령의 부동산 관련 발언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부동산 정상화는 코스피 5000보다 중요한 일" "집값이 부당하게 오르면 집 없는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워진다" "부동산 투기로 나라 망한다" "부동산에 매이면 사회·경제 구조가 왜곡된다".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부동산 불패신화와 투기 카르텔을 깨트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집값을 잡지 못하면 민생도, 경제도, 정권의 미래도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부동산 이슈가 이 대통령 의제의 끝은 아닐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창원 타운홀 미팅에서 임금 격차 문제를 언급하며 "우리 사회 주요 의제로 시끄럽게 논쟁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너무 엄두가 안 나서 일단 부동산 먼저 정리하고 (해결책을 모색할까) 생각중"이라고도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 등의 임금 격차는 노동계의 가장 큰 이슈다. 왜곡된 임금 구조는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지만 워낙 논쟁적 사안이어서 역대 정부에서 손대지 못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부동산에서 했던 것처럼 직접 뛰어들겠다고 예고했다
대통령의 '아젠다 설정' 기능 적극 활용
주요 정책 이어달리기 안 되면 물거품
대통령에게는 '어젠다 설정' 기능이 있다. 임기 내에 해결해야 할 핵심 어젠다를 선정해 힘 있게 밀어붙이는 건 대통령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권력과 예산을 동원해 대한민국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경제적 의제를 던지고 돌파하는 건 국가를 책임진 지도자의 소명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 오래된 난제들을 하나씩 풀기로 작심한 듯하다. 윤석열 정권을 끌어내린 촛불 시민들이 원한 건 내란 종식을 넘어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 같은 '성과 지향형' 인물은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권력을 잡으려 한다. 권력이 목적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자 방편인 것이다. 이 대통령이 사회경제적 차별성이 드러나는 의제를 자주 던지는 것도 이를 입증한다. 이 대통령의 지지층 가운데는 대선 뒤 새로 유입된 이른바 '뉴 이재명'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보통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새 지지층을 만드는 것이다.
계층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 같은 과제는 쉽게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회구성원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여서 정부가 온 힘을 다해 매달려도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집권세력의 치밀한 전략과 굳은 의지, 구성원들의 강력한 지지가 어우러져야 한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 지금보다 더 탄탄해져야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여러 진보적인 어젠다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 일순간에 휴지조각이 됐던 장면을 떠올리면 진보세력의 결집도 필수 조건이다.
미국에서 남북전쟁 이래 유지돼온 공화당 일극체제를 바꾼 계기는 다양한 계층과 정치 세력이 규합된 뉴딜 연합이었다. 뉴딜은 단순히 공공사업을 통한 실업자 구제가 아니라 사회개혁 성공을 위한 루스벨트 대통령과 민주당의 치밀한 정치 전략이었다. 무너진 경제를 살리고, 사회불평등을 개선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개혁의 결과였다. 민주당은 보수 유권자까지 끌어들여 30여 년 동안 지속된 안정된 진보 다수연합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정책을 통한 사회경제적 과제 해결에 목표를 둬야 한다. 이를 통해 정치사회적 질서를 재편함으로써 다수 연합을 구축하는 길을 열 수 있다. 20, 30년을 내다보는 대개혁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이 잠시도 한눈 팔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