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동훈의 조급증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애면글면하던 국민의힘 복당에 먹구름이 끼었다. 한동훈을 겨냥해 '복당 영구 금지'까지 꺼낸 장동혁 대표야 그러려니 해도 조금은 달라지는가 싶었던 국힘 의원들도 싸늘해진 모양새다. 한 의원 복당에 호의적이었던 정점식 원내대표는 "지금은 이슈가 아니다"고 한발 물러섰고, 다른 의원들도 손사래를 치고 있다.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 가지 단서는 안철수 의원과의 설전이다. 최근 추경호 대구시장의 내란 혐의 재판에 출석한 안 의원이 "계엄 당일 당사 집결을 처음 공지한 건 당 대표였던 한 의원"이라 증언하자 한 의원이 "사실 왜곡으로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며 발끈했다. 이어 친한계 의원들이 안 의원의 당적 변경 등을 거론하며 인신공격을 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급기야 안 의원은 "(한동훈은) 우리 당에 얼씬도 말라"며 복당 기류에 찬물을 끼얹었다.

과거 안 의원에게서 보기 어려웠던 날 선 반응에 '당 주류 배후설' '전당대회 출마용'이란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 건 한 의원이다. 당권파와는 결이 다른 안 의원과 정면으로 각을 세운 건 패착이다. 안 의원이 반대한다고 복당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한동훈의 아킬레스건인 '배신자' 프레임이 논쟁을 계기로 되살아났다. 한 의원은 국회 입성 후 복당에 전력을 기울였다. 다선 의원들이 주도하는 공부 모임에 적극 참여하는 등 친윤계 의원들과도 접점을 늘려왔다. 어렵게 쌓아온 공력이 이번 일로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한 의원은 억울할 수 있다. 국힘 대표로 가장 먼저 비상계엄에 반대했는데 내란의 공범으로 엮이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한 의원이 당일 밤 11시께 임시집결지를 당사로 안내한 건 엄연한 사실이다. 본인도 이를 인정했다. 그래놓고 안 의원을 향해 왜곡이라고 주장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 의원은 그간 이런 내용을 법원에서 증언해 달라는 특검의 거듭된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그러던 한 의원이 이제와서 이러쿵저러쿵 하니 "한동훈 한 사람이 영웅 서사를 쓰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올만하다.

섣부른 안철수 의원 공격, 복당에 난기류
이준석과 또다른 전선, '보수 분열' 가
조급함 버리고 비전과 가치 정립 힘쓰길

개혁신당에서 벌어진 '정이한 자작극'에 한 의원이 뒤늦게 참전한 것도 뒷말이 많다. 그는 "개혁신당이 자작극을 언제 알았는지 밝혀라"고 몰아붙였는데, 부산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의당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선 한창 단합해야 할 시기에 이전투구를 벌이는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이준석 대표는 한 의원의 검사 전력을 들추고, "계엄을 자신의 정치적 분칠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안철수와 이준석이 공조해 한동훈을 공격하는 꼴이 됐다. 한 의원으로선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한 의원은 급해 보인다. 하루라도 빨리 국힘에 복귀해 세력을 확장하고 대선 주자로 몸집을 키우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복당 문제만 해도 의원 당선 직후에는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최우선 과제로 둔갑시켰다. 무소속이 되고 보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조급함을 더했을 수 있다. 대중에게 잊혀져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도 같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고 돌아가는 모든 현안에 입을 대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가뜩이나 보수 진영에서 우군이 아쉬운 한 의원은 공연히 두 개의 전선(戰線)을 만드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덕분에 퇴진 압력에 시달리던 장 대표는 기사회생했고, 당내에서 사퇴 요구 목소리도 점점 잦아들고 있다. 친한계 무더기 징계라는 무리수만 두지 않으면 '장동혁 체제'는 당분간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당 대표 제명의 단초가 됐던 이른바 당원 게시판 사건 수사도 1년여 만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모든 게 한 의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양상이다.

한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아직 부족한 정치인"이라고 몸을 낮췄다. 한 의원은 정치 입문 2년 만에 여당 비대위원장과 당 대표, 대선 경선 후보를 거쳤다. 짧은 시기에 중요한 정치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윤석열의 비호와 반이재명 정서에 기댄 바가 컸다. 단기간에 체급이 높아지다보니 고비마다 정치력 부재가 두드러졌다. 비상계엄 직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공동정부 선언 기자회견을 한 게 대표적이다.

정치인에게 숙고와 인내의 시간은 천금의 가치가 있다. 한 의원에게는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결여돼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를 책임질 지도자를 꿈꾼다면 지금이라도 차분히 정치적 비전과 철학을 세우는데 집중하는 게 나을 것이다. '보수 재건'과 대선 도전은 그 다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