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동훈, 아직 윤 대통령 '부하'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회동에 국민의힘에선 "큰 불은 꺼졌고 잔불마저 잡았다"고 반기지만 이상한 구석이 한 두개가 아니다. 두 사람의 만남이라는데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 사이에 끼었다. 독대인 듯 독대 아닌 독대같은 희한한 장면이다. 윤 대통령 참모가 누구 손을 들지를 생각하면 회담의 결말은 보나마나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과거 검찰 시절 회상이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윤 대통령이 주로 얘기를 했고, 한 대표는 듣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검찰 시절 두 사람은 상사와 부하로 한몸처럼 지냈다. 윤 대통령은 그 때의 화양연화를 떠올리며 한 대표에게 '영원한 부하'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싶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이 한 대표 독대 요청에 응한 건 권력의 역학구도를 분명히 보여주려는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자신이 한동훈보다 힘의 우위에 있음을 국민의힘은 물론, 보수지지층에게도 드러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에 한 대표가 독대에서 얻어낸 건 그리 손에 잡히는 게 없다. 한 대표 축출 시나리오인 '김옥균 프로젝트'가 당장은 가동되지 않겠구나 하는 믿음이 성과라고 여긴다면 너무 모양이 빠진다.

한 대표가 당직 인선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윤허'를 받으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수세적이다. 윤 대통령은 "당직 개편은 대표가 알아서 하라"는 말과 "사람을 폭넓게 쓰라"는 말을 동시에 던지는 이중플레이를 했다. 그러자 친한계는 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반색하고, 친윤은 '포용'에 방점을 두는 등 갈팡질팡이다.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당 대표가 인사 하나 마음대로 못하는 게 한동훈의 현실이다.

호기있게 출범한 '한동훈호'의 지난 열흘은 무기력에 가깝다. 취임 첫날부터 최고위원들이 노골적으로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도처에 깔린 친윤 세력의 딴지걸기에 소수파인 친한계는 숨조차 제대로 못 쉬고, 세불리를 확인한 한 대표의 행동반경도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새다.

권력 역학 구도 확인된 '윤∙한 회동'
한 대표 취임 열흘, 무기력한 모습
'채 특검법' 뒷걸음질로 한계 노출

'채 상병 특검법' 제3자 추천 방식은 한 대표가 야심차게 내놓은 '비밀병기'다.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중도층에 소구하고, 야권도 교란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형체가 흐려지더니 소멸의 길로 향하고 있다. 한 대표는 "입장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나 꼬박꼬박 당의 민주적 절차를 운운하는 건 약속 파기의 알리바이를 만드려는 속셈으로 비친다. 처음부터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친윤의 집단 반발에 역부족을 깨닫고 태도를 돌변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자기 색깔을 잃어버린 한 대표는 어느덧 총선 당시의 비대위원장으로 돌아간 듯하다. 윤석열 정부 정책은 무조건 옹호하고 선거를 망친 '이∙조 심판론'을 다시 꺼내들었다. 국군정보사의 기밀 유출 사태를 엉뚱하게 더불어민주당의 '간첩죄' 반대로 몰아가는 행태는 영락없는 총선 때의 한동훈이다. 함량 미달의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두둔하고, 정부의 방송장악을 당연시하는 데서도 한동훈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민심, 당심이 하나같이 한동훈을 국민의힘 대표로 뽑은 건 윤 대통령과 다른 길을 가라는 뜻이다. 윤 정부의 잘못에 대해선 가차없이 비판하고 퇴행하는 보수정당을 개혁하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한 대표 전당대회 출마를 놓고 측근 그룹에서 격론이 벌어졌을 때 반대하는 쪽은 권력구도에서 윤 대통령과 차별화가 어렵다는 주장을 폈지만, 하루빨리 검사 색깔을 빼는 게 대선에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결국 출마가 결정됐다고 한다.  

지금의 한동훈 모습을 보면 당 대표 출마를 하지 않는 쪽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과 '검사 공동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차별화에도 실패하면 한동훈의 존립 근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동훈이 여기까지 온 건 자신의 능력보다는 윤 대통령의 자책골 덕이 컸다. 이젠 한동훈만의 소신과 가치를 보여야 한다. 언제까지 윤석열의 부하로 남아있는한 한동훈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