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승부수 못 던지는 한동훈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야심차게 발표한 쇄신책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겠다"고 큰소리 쳤는데, 정작 윤석열의 '윤'자도 없었다. 이미 김용태 비대위원장도, 한달 전 송언석 원내대표도 당 차원의 사과를 했다. 그간 장 대표 혼자 버티다 이제서야 고개를 숙인 것이다. 개인 차원의 사과라는 것 말고는 무슨 의미가 있나. 그나마도 반쪽짜리인데.

모순적 언사는 또있다. 장 대표는 보수연대 의지를 피력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동의하고, 이재명 정권의 독재를 막아내는데 뜻을 같이한다면 마음을 열고 누구와도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사실을 그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동훈은 빼고'라는 말이다. 한 전 대표가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을 리 없고, 이재명 정부에 대해선 맨 앞에서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냥 한동훈이 싫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차라리 낫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대척점에 선 한 전 대표 첫 반응이다. 그는 장 대표 쇄신안에 대해 "다른 정치인의 판단은 품평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이 무슨 황당한 얘기인가. 이 대통령을 비롯해 웬만한 정치인은 '사생팬'처럼 쫓아다니며 독설을 날리던 사람 아니었나. 한 전 대표가 무슨 반응을 보일까 쳐다보던 이들만 머쓱해졌다. 그러다 하루가 지나서야 "'윤 어게인' 절연 없는 계엄 극복은 허상"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 대표 등 주류 세력은 이른바 '당게(당원게시판) 논란'을 빌미로 자신을 쳐내려는데 정작 한동훈은 뜨뜻미지근하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가 감사에 본격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전 대표는 "당을 퇴행시키는 시도가 참 안타깝다"고 했다. 남의 일도 그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얼마 뒤 당무감사위가 한 전 대표 가족 연루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는 "가족이 글을 올린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사코 사과는 거부했다.

'당게' 징계에도 뜨뜻미지근한 한동훈
1년 넘게 침묵하고 책임 회피한 게 화근
결기, 배짱 없이 강한 리더 성장 어려워

애초 당게 사건은 이토록 커질 일이 아니었다. 익명의 당원 게시판에 가족 명의로 윤석열 부부를 비판한 게 대수인가.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밝히고, 잘못한 게 있다면 고개를 숙였으면 될 일이다. 1년 넘게 침묵하면서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니 지금 같은 사달이 난 것이다. 남의 티끌은 들보처럼 보면서, 자신의 허물은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그의 결정적 약점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행태로 볼 때 한동훈 징계는 예정된 수순이다. 당 안팎에선 '당원권 2년 정지'나 '출당 권고' 등의 초강경 조치가 내려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마찬가지인 한 전 대표로선 승부수를 띄워야 할 순간이다. 그런데 한가하기만 하다. 유튜브에 출연하거나 SNS를 하면서 정치 평론가처럼 군다.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지면 당권이 절로 굴러올 걸로 생각하는 건가.

장 대표가 윤석열과 절연하지 않으면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초재선 의원은 줄잡아 30명이다.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한 전 대표에 줄을 설 수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이들과 접촉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당 요직인 정책위의장이 장 대표 체제에 균열을 내기 위해 사퇴라는 강수를 뒀지만 이를 개혁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어떤 시도도 보이지 않았다.  

지방선거 패배 우려가 커지자 보수 언론들도 부쩍 한동훈 거들기에 나선 모양새다. 국민의힘 지도부에 한 전 대표를 품으라고 성화다. 심지어 있지도 않은 '장동석(장동혁 한동훈 이준석) 연대설'을 띄우다 장 대표로부터 "시기상조"라는 핀잔만 들었다. 오죽하면 당권파인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 조선일보 논설위원들에게 "누구 가르치기 전에 자신부터 되돌아보라"고 훈계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됐겠는가.  

보수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은 한동훈의 리더 답지 않은 모습에 실망하고 있다. 선 굵은 정치가 아닌 당장의 득실만 따지는 협량함에 탄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바라는 건 소나기가 오면 맞고, 몸에 오물도 묻히면서 강한 리더로 성장하는 것이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역량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찍혀있다. 정치의 밑바닥에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올라오지 않았다는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결기와 배짱이 없이는 살아남기 쉽지 않은 게 냉정하고 엄연한 정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