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민석 총리의 뒤늦은 출격
지난 19일 이재명 정부의 속사정을 보여주는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투 축인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이 같은 날 동시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민석 총리도, 강훈식 비서실장도 여당이 추진 중인 검찰개혁 속도 조절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그 결과 하루 만에 이 대통령과 여당이 만나 온도차를 조절할 수 있었다.
총리와 비서실장의 동시 출격이 이뤄진 시점도 공교롭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여권 내부에 경고음이 울리던 때였다. 검찰개혁이라는 중대 사안을 둘러싼 당정 간 이견을 조율해 혼선을 막을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내부 결속을 다지고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함으로써 지지율 추가 하락을 막자는 의도가 있었음직하다.
김 총리가 기자들을 만난 건 취임 후 47일 만이다. 그 기간 김 총리가 주목을 받은 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현장 점검 정도다. 그새 여권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강선우 낙마 등 인사 논란이 불거질 때 김 총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 논란과 광복절 사면으로 여권이 궁지에 몰렸을 때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총리는 헌법이 보장한 국정의 2인자다. 굳이 책임총리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내각을 통할하는 위치에서 주요 정책의 이견을 조정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조언하는 역할은 말할 것도 없다. 김 총리가 장관들을 모아 주요 법안을 심도있게 검토하거나 민생 경제 정책 마련에 머리를 맞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김 총리의 취임 일성은 "국민의 새벽을 지키는 새벽 총리가 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가 새벽에 어디서 어떻게 국민을 위해 일하는지 알려진 게 없다. 자기 홍보로 비칠 것을 꺼려 조용히 활동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말을 가볍게 여겼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게다.
"새벽 총리 되겠다"는 취임 일성 실종
모든 국정, 대통령에 기대는 건 비정상
최근 시사주간지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김 총리가 뽑혔다. 윤석열 정부에선 내내 김건희가 1위를 차지했지만, 이번엔 배우자 김혜경 여사를 제치고 김 총리가 두각을 나타냈다. 나라가 정상화됐다는 징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세간에서 김 총리를 실세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입지가 크다는 것은 책임질 리스크도 함께 수반됨을 의미한다. 몸을 다해 일하고 책임도 지는 총리를 국민은 바란다.
강 실장의 행보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 출범 직후 강 실장의 수척해진 모습은 한 때 화제가 됐다. '워커홀릭'인 이 대통령에게 혹사당하고 있다는 밈이 생겼고, 비서실장이 얼마나 극한직업인지가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엔 강 실장의 모습도 부쩍 줄었다. 그러다보니 인사 과정에서 특정 비서관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강 실장은 "측근이나 실세 인사는 없다"고 일축했지만 정권 초에 그런 얘기가 도는 것만으로도 우려된다.
비서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의 책임자이자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가장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다보니 국정운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비서실장의 막중한 역할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을 불러 현안에 대해 설명하는데,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내용이길래 작심하고 "대통령님, 그건 절대 안 될 것 같습니다"고 했더니 "그래요. 안 된다는 소리 들으려고 불렀습니다"고 순순히 물러섰다는 것이다. 비서실장도 때로는 쓴소리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어디 총리와 비서실장 뿐인가. 이재명 정부 초대 내각이 완성 단계에 있지만 맡은 일을 딱 부러지게 하는 장관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경제 부처 수장은 핵심 증시 지표도 제대로 몰라 '코스피 5000' 정책 신뢰성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전 굴욕 계약 논란에 "정상 계약"이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막말에 성희롱 옹호 등으로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 출범 석달이 돼가도록 모든 정국 운영을 이 대통령에게 의지하는 듯한 현상은 걱정스럽다. 아무리 능력과 체력이 뛰어난 대통령이라도 혼자 국정을 처리할 수는 없으며,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통령은 대통령 일을, 총리는 총리 역할을, 장관은 장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때 정부가 제대로 굴러간다. 김 총리와 강 실장의 심기일전을 기대한다.